‘미디어데이’라는 말 그대로 미디어를 위한 자리다. 연맹과 구단에서 미디어의 중요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1990~2000년대 기자들을 위해 전 구단 감독, 선수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질문을 하던 행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미디어데이의 형태도 점차 변했다. 연맹, 각 구단 감독과 선수, 기자들만의 자리에서 벗어나 방송, 포털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생중계 시대가 열리면서 가뜩이나 딱딱한 미디어의 분위기가 더 굳어져 형식적인 질문에 형식적인 답변만이 오가는 재미없는 행사가 되고 말았다. 이에 실시간으로 본 팬들은 연신 ‘지루하다’, ‘식상하다’, ‘재미없다’는 반응의 일색이었다.
여기에 취재진에서 시즌이 끝나면 기억하지도 못할 ‘공약’을 묻는 맥락없는 질문은 미디어데이를 더 최악으로 몰고 갔다.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줘야 할 미디어데이가 식상하고 지루한 고루한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 들어 각 종목 연맹에서 팬들을 초청하면서 미디어데이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 K리그(축구)와 KBO리그(야구)가 2010년대 후반 전 첫발을 떼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과거에는 나름대로 재미있는 말을 준비해봐야 딱딱한 미디어들의 분위기에서 뻘쭘해지기만 했지만 팬들이 초청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멘트에 대한 리액션이 바로 나온다. 재미있거나 자신감 넘치는 멘트에는 해당 팀 팬들의 환호 또는 라이벌 팀의 야유가 따른다. 사람간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반응이 있어야 말할 맛이 나듯이 미디어데이에서도 감독, 선수들도 말할 맛이 생겼다.
21일 더 플라자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025 여자프로농구 개막 미디어데이도 그랬다. 200여 명의 팬들이 자리를 채우면서 한층 밝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WKBL미디어데이 팬 초청은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미디어데이에 팬들이 함께하면서 ‘재미있는 선수’는 필수요소가 됐다. 이명관(우리은행), 나윤정(KB스타즈)은 프로 데뷔 후 미디어데이에 처음 참석하는 선수들이었지만, 애초부터 팬들은 이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팬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인싸’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관은 개인 블로그도 운영 중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어내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컨텐츠 부자’다.
과거 미디어데이 첫 참석 선수들은 말한마디 하지 못한 채 앉아만 가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이명관은 자신에게 곤란한 질문을 재치 있게 김단비에게 넘기기도 했으며 나윤정은 김완수 감독의 외모를 평가하는 등 진행자의 질문에 재미있게 대답해 팬들의 폭소를 이끌어 냈다.
팬들과의 ‘티키타카(소통)’도 잘 맞았다. KB스타즈의 팬 김민재 씨가 나윤정의 이름으로 3행시를 “나윤정 선수는 예쁘다, 윤미 선수가 더 예쁜거 같다. 정말 예쁜건 강이슬 선수다”로 말하자 곧바로 작전타임 체스처를 취한 뒤 손으로 X를 하는 등 재미있는 리액션을 하기도 했다.
미디어를 위한 형식적인 행사에서 팬들을 위한 행사로 바뀐 미디어데이, 이제는 재미있는 선수, 감독, 잘 준비한 미디어의 질문이 필수다.
사진=문복주 기자, WKBL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