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이재범 기자] 신인선수 드래프트 지명 순위와 활약 기간은 보통 반비례한다. 지명 순위가 늦을수록 실낱 같은 기회를 잡지 못해 제대로 꽃도 못 피운다. 그렇다고 해도 뒤늦은 지명 순위를 딛고 주축으로 발돋움하거나 10시즌가량 활약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들을 만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회를 잡은 원동력을 들어보자. 세 번째는 은퇴 위기를 극복하고 2라운드 출신 중 김동욱(673G)에 이어 역대 2번째 많은 612경기에 출전한 양우섭(185cm, G)이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드래프트 지명 순간
드래프트 당시에는 ‘1라운드에는 뽑히지 않겠어’라며 자신감이 있었다.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1라운드 후반으로 갈수록 지명이 안 되었다. ‘프로도 못 갈 수도 있구나’, ‘현실의 벽이 높구나’ 생각했었다. 엄청 독하게 바뀌었다. 훈련을 더 많이 해야 이길 수 있고, 감독님과 코치님께 보여드리는 게 있어야 출전시간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서 쉬지 않고 운동했다. 오전, 오후, 야간으로 팀 훈련을 하면 1시간 먼저 나가서 한 시간씩 훈련을 더 했다. 잠을 거의 안 잤다.
신인 선수들에게 ‘옛날에 열심히 했는데 다시 돌아가면 더 열심히 할 거다’라고 한다. 그 때는 방법을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까 방법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기량이 늘고, 더 잘 할 수 있는지 안다. 시킨다고 하는 운동이 아닌, 자기가 생각해서 느끼고, 필요한 운동을 해야 한다. 포인트가드라면 시야를 넓혀서 패스를 하고, 득점 기회에서 슛을 넣을 수 있게 하면 더 발전할 거다.
오랜 선수 생활 원동력
데뷔할 때는 이렇게 오래할지 몰랐다. 그 때는 이창수 형이 나이가 많았는데 형이 아니라 삼촌뻘이었다. 제가 그 나이대까지 왔다. 부모님께서 주신 건강한 몸과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덕분이다. 계속 변화하려고 했다. 지금도 제가 못하는 게 있다면 도전하고, 안 되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SK는 스킬 트레이닝을 어린 선수들에게 많이 시켜서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게 한다. 저는 기본 농구, 빡세게 하는 농구를 배웠는데 SK에서 그런 농구를 전혀 못해서 흉내도 못 냈다. 감독님도, 코치님도 안 해봐서 그럴 수 있다고 하셨는데 하다 보니까 된다. 경기에서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선수만으로 봤다면 지금은 팀으로, 감독님께서 팀을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전희철 감독님의 플랜을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고 경기를 뛴다.
점프슛 훈련에 매진했던 KT 시절
김승기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저를 붙잡아 놓고 하나부터 열까지 기본기를 가르쳐 주셨다. 김승기 감독님을 만나서 농구 실력이 늘고, 김진 감독님을 만나서 꽃을 피웠다. 그 전에는 기본기 위주의 성실한 플레이를 했었다. 점프슛 연습은 3년 동안 루틴처럼 계속 했다. 그 때 감독님께서 ‘100개 던지면 100개를 넣을 수 있을 때 그만해도 된다’고 하셨다. 100개 쏘면 102개 넣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한 번은 ‘다 넣을 수 있다’고 했더니 ‘해보라’고 하셨다. 10개 이상 안정적으로 넣으니까 ‘그만 해’ 하라고 한 적이 있다. 점프슛을 연습했는데 3점슛까지 잡혔다. 슛은 연습만큼 자신감이 중요하다. 내가 연습을 이렇게 했으니까 못 넣는 게 이상하다며 몸이 반응하는 대로 던졌는데 3점슛 성공률이 올랐다. 그 때 ‘점프 패스는 무조건 하지 말라’, ‘센터에게 볼을 넣을 때는 발을 빼서 넣으라’ 등 스텝 하나하나를 혼나면서 배웠다.
2013~2014시즌 챔프전 양동근 수비
10년 전이다. 수비는 자신 있었다. 플레이오프 때 김진 감독님께서 기용을 안 하시다가 챔프 1차전에서 지고 2차전을 앞두고 저를 부르시더니 ‘양동근을 막을 수 있겠냐’고 하셨다. ‘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래, 네가 막아보라’고 하셨다. 결과가 좋게 나왔다. 믿어 주시니까 보답을 하기 위해서 죽기살기로 했다. 죽기살기로 따라다닌 것 말고는 없다. 동근이 형이 너무 대단하다. 지금도 뵈면 인사를 드리는데 너무너무 우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달리기를 잘 해서인지 뺏는 걸 잘 했다. 수비를 잘 한다고 생각한 건 대학부터다. 감독님께서 기본적으로 수비가 되어야 기용을 하신다. 신입생이라서 경기를 뛰려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팀에이스가 많아 공격력으로 비빌 게 아니라서 다른 것, 수비를 열심히 하고, 빨리 달리는 걸 높이 사서 진효준 감독님께서 출전기회를 주셨다.
은퇴 위기였던 2019~2020시즌
그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다. 코로나19가 터져서 힘든 것도 있지만, 경기에 투입이 안 되어서 선수로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왔나 싶었다.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아직 보여드리지 못 한 게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가족도,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들도 옆에서 응원을 해주시니까 SK 관계자와 문경은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다. 운이 좋게 한 번 해보자고 말씀을 해주셔서 인생 역전을 했다. 지금까지 너무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린다.
정규리그 통산 600경기 출전 도전(인터뷰 당시 589경기 출전)
욕심이 나고 있다. 오프 시즌 때 훈련을 열심히 했다. 몸도 좋았는데 전지훈련을 다녀와서 10주 정도 부상으로 쉬었다. 복귀해서 D리그 선수들과 훈련했다 그 당시 SK 엔트리가 정해져 있었다. 올라오기 쉽지 않았다. 전희철 감독님께서 올려주셔서 따라다녔다. 주축 선수들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 선수 중심으로 운영하는데 그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서 저에게 기회가 왔다. 출전기회를 잡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600경기 출전 욕심은 아니다. 팀이 승리하는 게 먼저다. 부수적인 건 그 후에 따라온다. 열심히 준비하면 따라올 거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
조언보다는 자신의 무기를 하나씩 만드는 게 중요하다. 동포지션의 선수보다 잘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잡아먹으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감독님 눈에도 들고 인정도 받는다. 본인 노력이 중요하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를 먼저 이겨야 한다. 자기를 넘어선 뒤 남을 잡아먹어야 인정을 받고 경기를 뛴다. 저는 저에게 져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어느 사람이 ‘자기와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남에게도, 내 자신에게 엄한 성격이라서 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 자신에게 진 적이 없다’는 말이 되게 좋은 말인 거 같다.
BONUS ONE SHOT
양우섭에게 전희철 감독이란?
SK 전희철 감독은 최고참인 양우섭을 출전선수 명단에 꾸준하게 넣는 이유를 묻자 “어린 선수 중에 잠깐 5분이라도 뛸 수 있다면 데리고 다닐 거다. 지금은 9~10명을 돌리는 상황에서 부상 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용할 수 있는 선수 중 양우섭이 가장 안정적이다”며 “최원혁이나 오재현 등이 파울트러블에 걸리거나 했을 때 투입할 수 있고, 또 1번(포인트가드)으로 가장 낫다”고 했다.
양우섭은 “전희철 감독님 성격 아시죠? 노장이라고 경기에 투입하거나 자리에 앉히는 게 아니다. 생각과 플랜이 많으시다. 출전선수 명단에 오르는 건 그 플랜 안에 제가 있다는 거다. 플랜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한다”며 “감독님께서 어떤 식으로 말씀하셔도 코트에서 보여드리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까 감독님 마음도 알게 되고, 평소 경기를 많이 뛰지 않아도 언제나 제 몫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양우섭은 이어 “SK에서 처음 FA가 되었을 때 다른 팀에서도 제안을 받았는데 전희철 감독님께 많은 걸 배우고 싶어서 SK와 재계약을 하고 싶었고, 지금도 너무 행복하게 농구하고 있다”며 “경기 준비와 전술 공부를 진짜 많이 하시는 전희철 감독님께 전략과 선수들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고 덧붙였다.
#사진_ 점프볼 DB(박상혁,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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