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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3시즌 만에 한을 푼 '슈퍼팀' KCC…그렇다면 13년 전, 지금의 멤버들은?

홍성한 기자 / 기사승인 : 2025-06-01 08: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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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홍성한 기자]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가 ‘슈퍼팀’ 부산 KCC의 우승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5위의 기적부터 치열한 형제, 사제대결까지. 볼거리가 풍성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KCC의 마지막 우승은 2010-2011시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 현재 KCC 선수들은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갑자기 궁금했다. 그래서 앨범을 뒤적뒤적 해봤는데…‘째깍째깍’ 2010년과 2011년, 흩어져 있던 지금의 KCC 멤버들을 꺼내 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랑이 감독’이었는데…
전창진 감독은 이때 당시만 해도 ‘호랑이 감독’으로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당시 강양택 코치와 이상민 코치는 공백기였다) 부산 KT(현 수원 KT)를 이끌고 있던 상황. 비록, 원주 동부(현 DB)라는 벽에 막혀 4강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지만, 41승 13패라는 성적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던 시즌이다. 송교창이 이때 당시 전창진 감독에게 암바를 시도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만 해도…



‘유일한 우승 멤버’ 신명호 코치
13년 전 우승 당시 멤버 중에 지금까지 KCC에 남아있는 이는 신명호 코치가 유일하다. 그는 2010-2011시즌 막판 제대해 우승이라는 달콤한 맛을 본 바 있다. 챔피언결정전 6경기에 모두 나서 평균 15분 11초 동안 4.7점 1.7리바운드 0.8어시스트 0.8스틸로 우승에 힘을 보탰다. 아 참! 당시 ‘신명호는 놔두라고!’는 통하지 않았다. 0.8개의 3점슛을 50% 확률로 적중시켰다. 참고로 하승진의 챔피언결정전 자유투 성공률보다 높았는데…하승진의 자유투 성공률은 3…(더보기)



안녕하세요. 고2 허웅입니다.
2010년 허웅은 고등학생 2학년이었다. 용산고를 다니던 시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허웅은 지금처럼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매일 새벽 운동을 거르지 않았던 그는 연세대를 거쳐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성, 리그 정상급 슈터로 성장해 KCC에 우승을 안기며 플레이오프 MVP의 영예를 누렸다.



문신 없는 최준용, 처음이죠?
1994년 생인 최준용 역시 고교생으로서 꿈을 키워가던 시절이다. 최준용은 경복고 시절부터 이종현(정관장)과 함께 '고교 최대어'로 평가받았다. 그때 당시 청소년 대표팀 라인업은 천기범-최성모-강상재-최준용-이종현. FIBA가 주관하는 U18 아시아농구선수대회, U19 세계농구선수권대회 출전 등 국제 경험도 풍부하게 쌓았다.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문신은 없었다. 문신 없는 최준용 처음이죠? 어떤가요?



이때도 ‘두목 호랑이’였죠
이승현의 2011년은 고려대의 간판 선수였다. 이때부터였다. ‘두목 호랑이’. 이승현도 어렸을 때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다. 고려대 시절 총 6번의 우승과 함께 3번의 MVP를 차지하며 찬란한 대학교 생활을 보낸 바 있다. 이승현은 5월 8일 ‘아빠 호랑이’가 됐다. 2023-2024시즌 프로 데뷔 후 가장 힘든 시즌을 보냈던 ‘두목 호랑이’의 다가오는 시즌을 응원해본다.



전 뭐 하고 있었냐고요? 리카르도 라틀리프였는데요?

라건아는 대학교 졸업반이었다. 라건아는 미주리대학교 출신. 캔자스대학교 라이벌로 유명한 미주리대는 NCAA에서 강호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후 NBA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낙방한 라건아는 2012-2013시즌 곧바로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입단, 프로 데뷔를 한국에서 하게 된다. 레전드의 시작. 이때부터였다.



고등학교, 대학교요? 전 중학교 졸업도…
송교창은 이때 당시 중학교 졸업도 안 한 상태였다. 뽀시래기 그 자체.
삼일중 때부터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3학년 시즌에는 삼일중을 소년체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참! 송교창의 이때 신장은 194cm. 덩크슛까지 성공시키기도 했다고. 어떻게 하면 그때부터 그렇게 키가 클 수 있나요 저도 좀…(부득이하게 사진은 고등학교 시절임을 알립니다.)



뭐 학생? 난 프로였다 애들아~
KCC의 주장, 빛과 소금. 정창영은 무려(?) 프로였다. 2011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로 창원 LG에 지명을 받았다. 데뷔 시즌 41경기에 나서 평균 3.7점 3점슛 0.5개(성공률 37.5%) 1.5리바운드 1.7어시스트로 백업 가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애들아 봤지? 난 이미 프로팀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고 있었단다. 근데 왜 눈물이….

#사진_점프볼 DB,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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