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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두의 꼬치 COACH] “지도자로 돌아가면 더 잘하고 싶어요” 전 현대모비스 성준모 코치

조영두 기자 / 기사승인 : 2024-09-18 06: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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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영두 기자] 현재 KBL과 WKBL에는 총 46명의 코치가 각 팀의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이중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있는 반면, 선수 시절 다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코치도 있다. 이번 코너에서는 선수시절 화려한 경력은 아니었지만 지도자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9월호 주인공은 성준모 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다.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친 성준모 전 코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모비스 매니저로 돌아왔고, 2011년 고양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 코치로 선임되며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었다. 2013년부터는 모비스 코치로 돌아와 왕조를 구축하는데 힘을 보탰다. 2021년 전력분석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성준모 전 코치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대모비스와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노력의 대명사 성준모 전 코치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9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늦게 농구공을 잡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사실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어요. 전주에 있는 우석고에 진학을 해서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죠. 그러다가 갑자기 농구선수가 되고 싶은 거예요. 친구한테 이야기 했더니 전주고를 맡고 계시던 김만진 코치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그래서 테스트를 보게 됐죠. 농구선수 한다고 하니까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제가 당시에 공부를 잘했거든요. 근데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아버지 앞에서 성적표와 상장을 모두 찢어버렸어요. 제 마음을 아셨는지 다음날 아버지가 같이 전주고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농구와 인연이 시작됐어요.

어떤 스타일의 선수였나요?
농구를 늦게 시작해서 1년 유급을 했어요. 고1때 신장이 183cm였는데 운동 시작하고 7cm가 컸어요. 김만진 코치님이 저를 키우려고 많이 노력하셨죠. 훈련을 하루에 네 번씩 했어요. 운동하느라 점심밥도 못 먹게 하실 정도였어요. 주 포지션은 파워포워드였어요. 힘 있고, 잘 달리고, 운동능력도 좋았거든요. 2학년 때부터 주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경기를 뛰었고, 관심을 받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한양대에 진학한 후 2001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전주 KCC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1라운드에 뽑힐 줄 알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한양대 간 걸 후회했죠. 지나간 이야기지만 저보다 기록이 안 좋은 친구들이 먼저 뽑혔거든요. 그걸 보면서 ‘학교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오히려 오기가 생겼어요. 더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KCC 입단 후 추승균, 정재근, 양희승 등 선배들에 밀려 거의 뛰지 못했는데요?

너무 신기했어요. 티비에서 보던 (이)상민이 형, (조)성원이 형, (양)희승이 형, (추)승균이 형과 같은 팀에서 뛰게 됐으니까요. 당시 유도훈 감독님이 막내 코치였는데 저를 엄청 독하게 훈련시키셨어요. 휴가도 안 주실 정도로요. 연습경기에서 나름 잘했는데 형들이 들어오니까 안 되더라고요. 기록이 좋지 않았고, 낙심했었죠.

이후 모비스로 트레이드 됐고, 2005-2006시즌 정규리그 1위에 올랐습니다.
제가 먼저 트레이드를 요청했어요. 상무에 다녀오니까 허재 감독님이 KCC에 새로 부임하셨어요. 근데 일본 전지훈련에서 출전기회를 안 주시는 거예요. 방에서 울면서 상민이 형한테 ‘다른 팀에서 뛰어보고 싶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상민이 형이 (정)재근이 형한테 이야기를 해줬고, 모비스로 가게 된 거예요. 2005-2006시즌에 (구)병두 형이 허리를 다쳐서 저와 (이)병석이 형이 많이 뛰었던 기억이 나요. 이때 유재학 감독님께서 슈터였던 저에게 수비수로 전향해보라고 권유하셨죠. 경기에 많이 뛰었고, 정규리그 1위도 해서 너무 행복했어요.

2005-2006시즌이 끝난 후 오리온스로 또 한 번 트레이드 됐는데요?
시즌 끝나고 유재학 감독님께서 방으로 부르셔서 트레이드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김진 감독님께서 저를 원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오리온스에서 경기를 가장 많이 뛰었어요. 피트 마이클과 호흡이 잘 맞았죠. 공격력이 워낙 좋으니까 국내선수들이 수비만 잘하면 됐거든요. 경례 세리머니도 마이클이 먼저 하자고 한 거예요. 그 당시는 세리머니가 거의 없던 시기여서 형들한테 한 소리 듣기도 했는데 마이클이 하자고 해서 했어요

2007-2008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그때 오리온스 팀 사정이 좋지 못했어요. 성적도 하위권이었고요. ‘내가 여기서 더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등학교 시절 우석고 재학 당시 농구 동아리에 오중일 선배라고 계셨어요. 오프시즌에 연락을 했는데 텍사스대 펜 아메리칸 캠퍼스 교수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 놀러갔죠. 거기서 대학원에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 길로 팀에 은퇴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돌이켜보면 선수 생활에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요?

아쉬움은 없어요. 운동을 후회 없이 했거든요. 은퇴 후에 김진 감독님께서 (서울) SK 와서 다시 해보자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때 흔들리더라고요. 그래도 ‘저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까 응원해주겠다고 하셨어요.

“유재학 감독님과 평생 함께 하고 싶어요”
현역 은퇴 후 미국 유학을 떠난 성준모 전 코치는 모비스 매니저로 돌아왔다. 이후 오리온스 코치로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유재학 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모비스 코치로 합류했다. 성준모 전 코치는 유재학 전 감독의 훌륭히 보좌하며 모비스가 KBL 최초 쓰리핏을 달성하는데 힘을 보탰다. 또한 매니저로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성준모 전 코치에게 유재학 전 감독은 스승 그 이상의 존재였다.

미국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은퇴하고 고향 전주에서 친구한테 영어 기초 문법을 3개월 동안 배웠어요. 그리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해커스 어학원 새벽반을 등록했죠. 그때는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다 외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으로 넘어갔는데 토플 시험을 봐야된다고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어요. 무조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려고 했죠. 결국, 토플 시험에 합격했는데 한양대 시절 학점이 걸리더라고요. 다행히 오중일 선배가 교수 추천서를 써줬어요. 대학원에서 첫 학기 3과목 성적이 모두 B이상 나오면 받아주겠다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3시간도 안 자고 공부만 해서 A, A+, B+의 성적을 받고 합격하게 됐어요.

2010-2011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모비스 매니저로 합류하게 됐는데요?
미국에서 토플 시험 합격하고 비자 갱신을 위해 한국에 왔었어요. 그 때 이도현 전 사무국장님을 만났어요. 당시에는 과장님이었죠. 제가 선수시절에 모비스 통역이어서 친하게 지냈거든요. 밥 사준다고 해서 만났는데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기회만 있으면 오고 싶다고 답했어요. 이후에 첫 학기 끝나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네가 무슨 꿈을 갖고 미국에 갔는지 알고 있다. 당장은 이뤄줄 순 없지만 매니저 자리가 났는데 해볼 생각 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 만에 미국 생활 정리하고 모비스로 가게 됐어요.

해당 시즌이 끝난 후 오리온스 코치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추일승 감독님과 함께한 적이 있어요. NCAA 경기를 보러갈 건데 통역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모비스에 있는데 어느 날 유재학 감독님이 부르셨어요. ‘(추)일승이가 다녀갔는데 너를 달라고 하더라. 어떡하냐’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가서 도전해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오리온스로 합류했어요.

첫 지도자 생활인데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당시 제 나이가 33살이었어요. (조)상현이 형은 35살이었는데 선수였고요. 너무 의욕만 앞섰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이 정말 많았어요. 전력분석, 외국선수 업무, 팀 훈련까지 다 하느라 잠을 못 잘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2013-2014시즌을 앞두고 모비스 코치로 돌아오게 됐는데요?
오리온스와 계약이 만료되고 나서 막막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유재학 감독님께서 남자농구 대표팀 매니저 제의를 하셨어요.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김)기정이 형이 팀을 나간다고 해서 모비스 매니저로 다시 가게 됐죠. 시즌 개막하고 어느 날 밤에 갑자기 감독님이 부르시더라고요. 술자리에 갔는데 김기준 단장님, 이도현 사무국장님, 코치님들까지 다 계셨죠. 감독님이 소주 한 잔 따라주시면서 ‘축하해 성 코치’라고 하시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코치로 계시던 (김)재훈이 형과 (조)동현이 형도 함께 기뻐해줬어요.

모비스 코치 시절 KBL 최초 쓰리핏을 달성하는데 힘을 보태며 왕조를 구축했습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죠.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실 그때는 감독님 농구를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항상 수첩과 볼펜을 갖고 다녔어요. 훈련마다 메모를 해놓고, 실전경기에서 보면서 비교를 했죠. 감독님 수비가 정말 많고 디테일하거든요. 경기 때 벤치에서 어느 타이밍에 이 수비를 쓰는지 저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매니저로 금메달에 힘을 보탰는데요?
유재학 감독님께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때가 인천 아시안게임이었어요. 만날 농구 생각만 하셨거든요. 감독님께서 ‘무조건 금메달 따야 된다. 이걸 계기로 농구 인기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다른 건 못해도 금메달로 일조하고 싶다’고 수 차례 말씀하셨어요. 그러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 수밖에 없었죠. 금메달을 딴 순간에는 너무 행복했어요. 저도 모르게 감독님을 껴안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잠시 미쳤던 것 같아요(웃음).

성준모에게 유재학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크게 3가지를 배웠어요. 경기 준비, 상대팀의 어떤 점을 분석해야 되는지, 경기 후 복기까지요. 감독님은 지면 핑계를 대지 않으세요. 버스 타고 숙소까지 이동하는 15분 동안 메모를 하시죠. 짧은 15분 동안 그날 경기를 복기하시는 거예요. 머리도 좋으시지만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 된 거죠. 저는 감독님 농구를 이해하는데 3년이나 걸렸어요. 개인적으로 감독님과 평생 함께하고 싶어요. 나중에 아무렇지 않게 맛있는 안주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게 제 꿈이에요.

“다시 지도자로 돌아가고 싶어요”
2021년 성준모 전 코치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겪는다. 코치에서 전력분석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 이후 두 시즌 동안 업무에 충실하게 임했지만 지난 시즌 종료 후 갑작스럽게 현대모비스를 떠났다. 지도자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 현재 성준모 전 코치는 작은 기업을 다니며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동시에 지도자로서 농구계로에 복귀하기 위한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아마 언젠가 성준모 전 코치를 다시 농구 코트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2021년 코치에서 전력분석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제 일이 너무 많았어요. 전력분석, 외국선수 업무, 신인 드래프트 준비까지 다 했거든요. 그래서 먼저 박구영 코치에게 신인 드래프트 준비를 맡겼어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전력분석팀장으로 옮겨서 전담을 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팀에서도 전력분석 파트를 크게 키울 생각이 있었고요.

벤치가 아닌 코트 밖에서 경기를 보면 또 다른 부분이 보일 것 같은데요?
밖에서 농구를 보니까 더 잘 보이더라고요. 잘 보이니까 전력분석 업무도 훨씬 수월했고요. 유재학 감독님이 경기 시작하고 5분 지나면 어떻게 준비했는지 아시는데 저도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임기응변 방법까지 보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다시 코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솔직히 있었어요. 그래도 제 업무가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했죠. 저는 에이전트한테 의존을 안 했어요. 전 세계 농구를 거의 다 봤거든요. 하루 종일 영상만 볼 정도였으니까요. 나중에는 에이전트가 저한테 ‘이 선수 어때?’라고 되묻더라고요. 스스로 뿌듯했어요.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대모비스를 떠났는데 어떤 이유였나요?
지난 시즌 앞두고 코치가 하고 싶더라고요. 선수들과 같이 땀을 흘리고 싶었어요. 책임감 때문에 전력분석 업무는 계속했는데 어느 순간 열정이 떨어지더라고요. 이럴 바에는 저보다 열정 있는 사람이 와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즌 중반에 조동현 감독님, 유재학 감독님, 구본근 사무국장님께 ‘더 늦기 전에 코치를 해보고 싶다’라고 말씀드렸죠. 이승민 단장님까지 나서서 말리셨는데 한 번 결심했기 때문에 밀어붙이고 싶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여기서 우석고 농구 동아리 이야기가 또 나와요. 임권호 선배라고 계시는데 작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현대모비스에서 나온 뒤 저녁을 먹는데 ‘세상 살아가다보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다. 농구인으로 경험을 쌓았으니 다른 경험을 해봐’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자회사에 저를 취직시켜주셨어요. 요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있어요. 협력 업체들과 상생관계 유지하면서 도와주고, 현장에 일 있으면 갈 때도 있죠. 요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

지도자로 돌아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요?
현대모비스에서 뭘 공부해야 될지 자료를 방대하게 준비해서 나왔어요. 예전 자료부터 최근 자료까지 다시 보고 있는 중이에요. 유재학 감독님과 통화하면서 상의도 하고요. 요즘은 농구 트렌드가 바뀌었어요. 5명이 모두 뛰는 농구가 대세죠. 그래서 모션 오펜스, 얼리 오펜스 등을 전부 세분화 시켜놨어요. 제가 준비한 것과 전 세계의 패턴도 전부 모아놨죠. 다시 지도자가 된다면 자신 있을 만큼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선수시절 주목받지 못했어도 지도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요?

저는 선수 생활이 짧았고, 인맥도 없었어요. 그래도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좋은 지도자를 만나 오랫동안 모셨으니까요. 그분이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이 되셨고요. 처음 코치가 됐을 때는 마냥 좋았지만 나중에는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재학 감독님께서 ‘특기를 길러라’라고 방향성을 제시해주셨어요. 물론 스타플레이어 출신 코치들이 지도자가 되어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노력을 많이 하고, 준비된 지도자들이 더 성공할 거라고 봐요. 저도 언젠가 다시 지도자가 된다면 더 잘해보고 싶어요.

지도자로서 이루고 싶은 마지막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다시 지도자가 된다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야 제가 가진 모든 걸 다 쏟아부을 수 있거든요. 그거면 충분해요. 그럼 후회도 없을 것 같아요.

▼ 성준모 전 코치 프로필
생년월일

1978년 1월 25일
신장/체중
190cm/90kg
출신학교
팔복초-전주서중-전주고-한양대
선수경력
2001~2003 전주 KCC
2005~2006 울산 모비스
2006~2008 대구 오리온스
지도자 경력
2011~2013 고양 오리온스
2013~2021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
2022~2023 울산 현대모비스 전력분석팀장

# 사진_점프볼 사진부,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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