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최창환 기자] 최연소 국가대표부터 WNBA 진출, 그리고 청주 KB스타즈와 여자대표팀의 기둥 역할까지. 박지수(26, 196cm)는 아직 20대 중반임에도 불구, 어마어마한 경력을 쌓았다. 올 시즌에는 KB스타즈의 부활에 앞장서는 등 여전히 최전성기다. 맡은 바 임무를 완수했지만, 박지수가 바라는 건 단순히 KB스타즈의 우승이 아니었다. WKBL의 발전, 더 나아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였다. 이를 위해 소신껏 자신의 견해를 남겼다. 박지수이기에 가능했던 솔직담백했던 그와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정규리그 종료 직후인 3월 3일 진행됐음을 알립니다.
올 시즌을 돌아본다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러갔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는 시즌이었어요. 감독님이 미팅할 때 “우리 몇 경기했냐?”라고 물어보시면 헷갈릴 정도였죠. 그래도 KB의 모습을 찾아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즌이었어요. 시즌 초반에 부족한 모습도 있었지만, 보완해나가며 다들 자신감이 살아났죠. 팀에 대한 믿음도 생겨서 즐거운 시즌이었어요. 아직 플레이오프가 남아있지만, 다들 팀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 만큼 플레이오프에서도 재밌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3번째 정규리그 우승입니다. 앞선 2차례 우승과 차이점이 있다면?
경기를 풀어갈 때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첫 번째 우승은 너무 힘들기만 했고, 2번째 우승은 마냥 행복했어요. 이번에는 2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더해진 우승이에요. 힘들기도, 행복하기도 한 시즌이었지만 아직 플레이오프가 남았잖아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축포를 터뜨리기엔 이르다’라는 마음이에요. 그런 면에서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기도 해요.
팀 성적도 중요한 시즌이었지만, 개인으로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게 최우선 과제였을 것 같습니다.
오프시즌에도 계속 기복이 있었어요. 개막 후에는 그런 모습을 안 보여주려 했는데도 종종 나왔죠. (크게 티 나진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성공이고요(웃음). 지난 시즌은 제 건강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있었어요. 이제는 제가 언제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서 관리하는 게 수월해졌죠. 완벽히 건강해졌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정규리그 우승도 할 수 있었고요.
언제 컨디션이 안 좋다고 느껴지나요?
체력적인 면에서 힘들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힘들어도 넘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는데 요새는 한계치에 도달하면 지치는 느낌이에요. 몸이 그렇게 느껴요. 체력이 떨어진 것보단 자율신경계가 영향을 받는 건데,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오작동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한계치까지 안 가기 위한 조절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한계치를 넘어서는 게 맞냐, 아니냐에 대해 감독님, 트레이너, 저의 의견이 분분했어요. 힘들 때 한 발 더 뛰면서 숨통 트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거든요. 그럴 때 오히려 페이스를 다운시키는 게 좋은 방법이었다는 걸 느꼈어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지금도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게 따로 있나요?
약은 꾸준히 복용하고 있어요. 바로 끊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증상이 종종 다시 나올 땐 호흡을 조절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정신이 나갈 거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멘탈 코치님도 계셔서 빠르게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죠.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서 지금은 괜찮아요. 감정이 안 좋을 때도 가끔 있지만, 좋은 날이 훨씬 많아졌어요. 전에는 반대로 안 좋은 날이 더 많았거든요.
예전에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은 괜찮지만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요. 감기도 걸릴 거라고 미리 안 알려주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 컨디션이 안 좋을 것 같은데 막상 경기 치르면 좋은 날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어요. 예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대비는 할 수 있는 거죠. 감기도 손 씻고 마스크 착용하면 예방할 수 있잖아요.
항상 절대적인 강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기는 게 당연한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을 것 같아요.
2번째 우승할 때 그 스트레스가 정말 컸어요. 백투백 우승이 아니었잖아요. 우승은 당연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과거의 신한은행, 우리은행처럼 몇 시즌 연속 우승한 게 아닌데 계속 그런 시선으로 우리를 보는 것에 대한 부담은 분명 있어요. 아직 저희는 이룬 게 많지 않은 팀이에요. 물론 그래서 저도 욕심이 크고 이겨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을 항상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은 역시 청주 팬들 아닐까 싶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농구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육성 응원도 나왔고요.
그때 선수들끼리 소름끼친다고 했어요. 진짜 닭살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상대 팀이었다면 멘탈 나갔을 거예요(웃음). 홈 버프를 받는 것에 대한 든든함, 뿌듯함이 있어요. 프로스포츠는 정말 성적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낀 시즌이기도 해요. 지난 시즌에 경기장에 안 간 날이 많긴 했지만, 성적이 안 좋으니 휑하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청주체육관이 아니었죠. 올 시즌은 ‘평일인데도 이렇게 많이 오신다고?’ 하는 날이 많았어요.
정규리그 홈 전승은 역대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클 텐데 마지막 경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홈경기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겠지만, 그만큼 청주에서 경기하면 든든해요. 10점 차로 지고 있어도 뒤집을 거 같은 ‘근자감’도 있어요. 각 팀 홈구장마다 특색이 있겠지만, 저희만큼 든든하게 홈경기를 치르는 팀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올 시즌을 치르는 동안 위기라 느꼈던 순간은?
우리은행에 처음으로 졌을 때죠. 예상도 못했어요. 준비도 잘했고, 전반 경기력도 굉장히 좋았거든요. 우리은행은 역시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못 놓는 팀인 것 같아요. 버저비터로 져서 멘탈이 나갔지만, 위기이자 기회라고 받아들였어요. 잘 준비해서 앞으로 남은 대결은 다 이기자는 다짐을 하게 됐죠.
5라운드 연속 MVP 역시 역사에 남을 기록일 텐데?
3라운드 연속 MVP부터 최초의 기록이라고 하더라고요. 한 선수가 계속 그렇게 받은 적이 없으니 저도 힘들 거라 생각했어요. 3라운드까지 받은 이후부터는 욕심도 생겼죠. 그런데 욕심을 부리니 화도 오더라고요. 들어갈 슛도 안 들어가서 시즌 후반은 ‘이러면 안 되지’라며 욕심 비우고 치렀어요. 라운드 MVP 트로피는 정규리그 MVP 트로피에 비해 무겁더라고요. 곧 있으면 집 무너질 것 같아요(웃음). 물론 상복이 따른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저는 많은 사람 중 선택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하면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일이죠.
국내선수 최초의 평균 20점 15리바운드 5어시스트도 기록했습니다.
제가 욕심이 큰 건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만하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 신체 조건이 저보다 좋은 선수가 없잖아요. 많으면 신장이 10cm 이상 차이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스스로 기준점을 높게 잡고 경기를 치러요. 못 이루면 속상한 마음도 크죠. 그래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운동선수는 항상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스스로 기준점도 높게 잡는 것이고요. 앞으로 더 좋은 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벌써 MVP 트로피에 이름 새겨져있지 않을까요? 단일시즌 도입 후 MVP 투표에서 몰표를 받은 건 박지수 선수와 정선민 전 감독이 각각 2차례씩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몰표를 받으면 역대 최다 기록이 됩니다.
그런가요? 근데 그건 제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기자분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야 가능한 건데 1명이 팬심을 담아 다른 선수에게 투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통산 MVP 수상 경험은 3회입니다. 이 부문 최다는 정선민 전 감독의 7회인데 언제가 최다 MVP를 경신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나요?
기록을 깨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기록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잖아요. 물론 그 이상을 이루면 좋겠지만 매 시즌 최선을 다할 뿐인 거죠. 열정은 있지만 ‘꼭 해낼 거야’라는 마음은 없어요. 지금에 충실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상식이 챔피언결정전까지 끝난 후 열리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올 시즌 중반까지도 일정 바뀐 걸 몰랐어요. ‘시상식 다가오니까 예쁜 옷 입어야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바뀐 일정을 들었죠. 솔직히 저는 상관없어요. ‘봄 농구’ 하잖아요. 플레이오프 떨어진 팀들은 휴가 중일 텐데 일정 짜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우승에 대한 갈망, 어느 정도인가요?
정규리그 우승이 사실 더 힘든 거지만, 진짜 우승으로 인정받는 건 챔피언결정전이잖아요. 당연히 해야죠. 플레이오프에서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없지만,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난해 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숙소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저기 붙어있는 사진 보셨죠? 지난 시즌 마지막 홈경기 후 팬들에게 인사하는 날이었는데 전광판 스코어(56-70)가 너무 잘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 속 제 표정 보면 진짜 안 좋아요. 올 시즌 내내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저 사진을 봤죠. 이 시즌의 기억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할 정도였어요. 복귀 후 손가락을 다쳐서 시즌아웃됐는데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거든요. ‘목적 없는 운동’을 하는 느낌이어서 공허했죠. 체육관에 나가서 선수들의 공을 잡아줄 수도 없었고요. 다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죠. 제가 체육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한국에서 그런 감정은 처음 느껴봤어요.
2023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 예선조차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이 컸을 것 같아요.
저희가 그동안 쌓아왔던 실력만 믿고 갔던 것 같아요. 준비 과정이 너무 허술해서 화도 났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현실이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죠. 예를 들어 대표팀이 친선전을 위해 라트비아에 간 게 첫 연습경기였어요. 친선전 이전에 어느 정도 연습경기를 치러봐야 안 풀리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어요. 충격이었죠. 선수들은 휴가 이후 소집된 거라 컨디션이 안 올라온 상태였는데 짧은 기간 동안 훈련만 하고 평가전을 치르러 갔으니 호흡이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농구는 기구를 드는 운동이 아닌 팀 스포츠잖아요. 실전 감각을 쌓을 기회가 부족했고, 아시아컵 성적(5위)은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속상하고 화나요.
FIBA가 주관한 A매치만 벌써 39경기입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제대회를 치렀는데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요?
당연하죠. 2022년에 아파서 쉴 때 굉장히 많은 소문이 있었잖아요. 기사로 나오진 않았지만 “대표팀 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냐?”라는 말도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제가 아팠을 때가 마침 대표팀 소집을 앞둔 시기였어요. 그래서 진단 결과를 알리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알리지 않고 회복이 되면 대표팀에 가고 싶었죠. 그런데 안 알리고 대표팀에서 하차하면 명분이 없으니 오해를 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주위의 우려에도 밝혀야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밝혔는데도 대표팀 빠지려고 그런 거냐는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여자대표팀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 회의감이 들었죠. 국가대표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에요. 가볍게 대하면 안 되죠. 그런데도 뛸 수 있는데 빠지냐는 말이 나와 더 힘들었어요. 농구공을 못 잡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힘들었는데 ‘괜히 밝혔나’ 싶기도 했죠.
2014년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선발됐습니다. 이후 10년 이 흘렀는데 그 사이 대표팀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제가 처음 선발되기 전에도 그런 얘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이 떨어졌죠. 비판을 많이 받고 있지만 그게 냉정한 현재 위치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서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죠. 제 또래 가운데 좋은 선수도 많아요. 저희가 힘을 모아 성적으로 보여줘야죠.
최근 예비명단 18~20명이 경쟁한 후 최종명단을 가려야 한다는 견해를 남겼는데, 취지와 달리 자극적으로 보도된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다고 들었습니다.
예상은 했고 기사로 인해 상처를 받은 건 아니었어요. 구단에서는 저를 걱정했는데 저는 기사를 본 다른 팀 선수들의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저희 팀 선수들은 괜찮아요. 제가 직접 얘기하면 되니까요. 다른 팀 선수들에게 오해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음 경기 때 자발적으로 인터뷰실에 들어갔던 거였죠.
WKBL에서는 적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더 발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많죠. 저는 여기서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저의 경기력에 대한 좋은 평가도 나오지만, 스스로는 내가 잘하는 부분이 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더 많은 기술을 연마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제가 하는 농구는 이기기 위한 플레이가 대부분이에요. 그것보단 외국선수들, 저보다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를 상대로 쓸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싶어요. 혼자 연습만 하다 끝나는 거 말고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요. 지금은 이기기 위한 농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의 성장은 더디다고 생각해요.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플레이도 아니고요.
외국선수 재도입에 대한 견해는?
최근 기사로는 찬성이라고 나왔는데 설명이 필요해요. 저만 생각하면 찬성이에요. 저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니까요. 그런데 WKBL 전반적인 부분이나 다른 선수들 입장을 고려하면 반대예요. 외국선수가 폐지된 직후에는 ‘경기가 재밌다’라는 반응도 많았어요. 이전까지는 클러치 타임 때 무조건 외국선수에게 공을 줬잖아요. 그건 KBL도, 프로배구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국내선수가 그 역할을 하고 있죠. 결국 승부처에서 해결하는 것도 계속 경험을 해봐야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선수가 있다면 경험 자체를 못하겠죠. 그래서 리그 전체를 봤을 땐 ‘재도입이 맞나?’ 싶어요. 상대 팀으로 경기를 하다 보면 ‘저 선수 정말 많이 늘었다’라고 느껴지는 선수도 종종 있거든요. 개개인의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거죠. 만약 외국선수를 재도입하게 된다면, 클러치타임에서는 외국선수 대신 국내선수가 역할을 주도적으로 맡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경기 종료 5분 전부터 외국선수 투입 금지는 어떨까요?
오, 그거 좋은데요. 그런 장치가 있다면 찬성이에요. 국내선수들은 성장하고 있거든요. 물론 그게 대표팀 성적으로 이어져야 증명하는 거겠지만, 몇 년 후 제 또래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주축이 된다면 좋은 성적을 낼 거라고 생각해요.
WKBL에서 경쟁했던 외국선수 가운데 특히 힘들었던 상대는 누구였나요?
모든 외국선수들이 힘들었어요. 특히 시즌 초반이 더 심했죠. 서로 모르는 상태로 붙잖아요. 그래도 한 번 경험하면 파악이 되고,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자신감도 생기죠. ‘저 선수는 무조건 이길 수 있어’, ‘이 타이밍에 블록슛하면 돼’라는 계산이 돼요. ‘도장깨기’ 하는 것 같은 성취감도 들었고요.
WNBA 재도전의 의지는?
항상 있어요. 저도 점점 나이가 들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나이가 더 들면 기회도 적어져요. 조금이라도 어릴 때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어요.
재도전하면 어떤 절차를 거치는 건가요?
저는 FA 신분이어서 에이전트가 계약을 추진해야 돼요. 라스베이거스 소속은 아니니까 정해진 건 없는 상태인데 아직은 언급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WNBA는 연봉 제도가 한국과 많이 달라요. 선수 노조가 있어서 연차별 최저 연봉도 있고, 모든 부분에서 제도가 점차 나아지고 있어요. WNBA에서 안 뛰더라도 제 연차는 계속 쌓이고 있거든요. 그래서 데뷔 4년 차가 넘어가면서 자동으로 FA 신분이 된 거고요.
미국생활 할 때 외롭기도, 즐겁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일단 제일 즐거웠던 건 출퇴근한다는 점이었어요(웃음). 훈련시간 외에는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재밌기도 했지만 그 부분이 단점이기도 했어요. 한국처럼 숙소에 있으면 동료와 얘기라도 하는데 미국은 혼자 있어야 하니까요. 제가 외로움을 안 느끼는 성격인 데도 타지에 혼자 있다 보니 외롭더라고요. 경기에서 많이 뛴 것도 아니었잖아요. NBA와 달리 WNBA는 전용기로 이동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연착되는 경우가 다반사죠. 하루 내내 연착돼 공항에서 잘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땐 ‘여기가 미국 맞나?’ 싶었죠. 가보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도 분명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남자농구에서는 이현중, 여준석, 양재민 등 조기에 해외로 건너가 학업을 쌓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자농구에서 최근 사례는 신재영 정도인데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을까요?
저도 중3 때 미국으로 진학하려 했어요. 계획도 다 세웠고요. 그런데 청소년대표팀에서 다치면서 계획이 다 꼬였어요. 미국은 9월 학기지만 한국은 3월에 개학하잖아요. 11월쯤 다쳐서 갈 준비를 다 해놓고도 무산이 됐죠. ‘그때 미국에 갔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은 아직도 크게 남아있어요. 어린 나이라면 습득할 수 있는 게 더 많잖아요. 외국선수와 맞붙으면 ‘어렵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데 어릴 때 경험해보면 그런 인식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저도 그땐 진짜 겁 없고 무서울 것도 없었거든요. 청소년대표 때 상대랑 엄청 싸우기도 했고요(웃음). 그래서 더 아쉬워요. 청소년대표 때 외국선수들과 맞대결하면 ‘뒤처진다’라는 생각을 안 했거든요. 그때 갔으면 더 재밌게 경험을 쌓았을 것 같아요.
미래에 ‘제2의 박지수’가 나온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빨리 미국에 도전했으면 해요. 그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정답은 없는 거잖아요. 미국은 다양한 선수들과 부딪쳐볼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에요. 1살이라도 어릴 때 갔으면 해요. 물론 우리나라 시스템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해야겠죠. 그래서 시기적으로는 고등학교 때 도전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직업이지만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농구일 것 같습니다. 박지수에게 농구란?
저 자체죠. 중학생 때 선생님이 “너희에게 농구는 뭐니?”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전 밥줄이라고 말했고요(웃음). 선생님이 엄청 웃으셨던 게 기억나는데 지금은 제 인생에서 빼놓고 표현할 수 없는 게 농구죠. 평생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잖아요.
그렇다면 박지수에게 한국 농구란?
하…. 이건 좀 심오하네요(웃음). 음…. 아픈 손가락? 딱 한 단어가 떠오르진 않는데, 한국 농구는 분명 더 잘할 수 있거든요. 그걸 보여주고 싶은데 지금까진 그게 잘 이뤄지지 않았죠. 그래서 저에겐 아픔이에요. ‘한국 농구는 망했다’라는 유튜브 콘텐츠가 엄청 핫했던 적도 있잖아요. 그렇게 표현한 언론도 있었고요. 그런 평가를 뒤집고 싶은데 아직 못 보여줬으니 아픈 손가락인 것 같아요.
혹시 인터뷰에서 못했거나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을까요?
대표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아직 여자대표팀 감독이 공석이잖아요. 어떤 분이 새롭게 맡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본이 외국인 감독과 관련해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해요. 물론 외국인 감독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축구 대표팀도 최근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래도 한 번은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맞다, 아니다’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길 수 있죠. (대한민국농구협회의) 평가 기준으로는 스티브 커 감독처럼 아무리 유명한 감독이라도 올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분명 한국 농구는 발전할 수 있는데 발판을 마련하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에요. 발판을 탄탄하게 다져야 발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_문복주 기자, FIB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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