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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구인생 제 2막 ②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 마음 코치’ 김미선 박사

편집부 기자 / 기사승인 : 2025-02-16 11: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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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편집부] 농구선수 출신으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 보려 합니다. 또는 비선수 출신이지만 농구를 기반으로 활기찬 인생을 꾸리는 분들의 성공 비결도 들어 보려 합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무슨 생각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세요?”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지”

2009년 피겨스케이트 영웅 김연아 선수는 방송 PD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멘탈의 중요성을 인용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례죠. ‘멘탈 터프니스(mental toughnes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경기 중 스트레스 극복과 경기력 극대화를 위해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경기력을 위한 멘탈은 의도되고 반복된 훈련으로 만들어집니다.

김미선 박사는 멘탈을 코칭합니다. 코칭의 어원은 헝가리의 코치(Kocs) 지역에서 개발한 마차입니다. 마차는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을 위한 도구입니다. 코칭 역시 생각과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동시킵니다. 저명한 티머시 갤웨이(T. Gallwey)의 말처럼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묶여있는 개인의 잠재능력을 풀어주는” 생각과 감정의 이동입니다. 김 박사는 이를 “개인의 변화와 발전을 지원하는 파트너십 과정”으로 표현합니다.

김 박사는 어린 나이에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여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수 생활이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알려준 것은 공부입니다. 공부를 통해 새로운 길을 만났습니다. 즐겁고 보람도 있는 길입니다. 그녀가 지금도 걷고 있는 길에는, 그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사연에는 묵직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길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농구로 성공할 자신이 없었어요
김 박사는 농구 명문 선일여중과 선일여고에서 주전으로 뛰었습니다. 178cm의 신장에 적극적인 수비와 리바운드가 강점이었죠. 실업팀의 입단 제의가 있었습니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농구로 성공하려면 실업팀에 가는 것이 당연한 코스였습니다.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강요받기 싫어 운동을 선택했는데, 공부를 선택했습니다.

“언니가 배구를 했어요. 아버지가 가정적이지만 엄하신데, 운동만 하는 것도 힘들다면서 언니에게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셨죠. 힘드니까 든든히 먹으라고 용돈도 더 주시고요. 저도 운동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농구부 코치님이 제 큰 키를 보고 제안했죠. 그때 저는 농구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맺은 농구와의 인연이 대학교 4학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긴 인연입니다. 그런데 즐겁기만 했던 인연은 아닙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선일여중에 갔습니다.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13살 소녀에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디나 그렇듯, 이방인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농구가 즐겁지 않았습니다. 실패에 대한 질책이 두려워 슛을 던지지 못하는 새가슴이 됐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히니 선배들의 애정 어린 충고도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농구선수로 성공할 자신감이 사라졌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체육교육학과가 있는 숙명여대로 진학했어요. 그런데 대학교 4학년 때 교생 실습을 하면서 교사의 꿈을 접었습니다. 아이들이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후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욕을 하는 모습도 봤어요. 그 아이들까지 사랑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강남의 특급 호텔에 헬스 트레이너로 취직했습니다. 회사 선배의 추천으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경희의료원의 운동처방사입니다. 이력서를 넣으면서도 기대를 안 했습니다. 석사 이상만 모집했으니까요. 그런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휘트니스 회원이었던 원장님이 회사 선배에게 추천을 요청했던 것이었습니다. 회원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니 환자들을 책임감 있게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입니다.

운동처방사는 대학의 전공과 다른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모교의 스포츠의학과 대학원은 업무에 도움을 주면서 자격증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변수가 생겼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안식년이라 스포츠심리학을 먼저 들은 것입니다. 마침 스포츠심리학 교수님은 김 박사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농구부 코치, 정지혜 교수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외롭고 힘들게 운동했던 과거의 저를 만났어요. 멘탈 코칭의 중요성을 몸이 먼저 느꼈습니다. 몸을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러 갔는데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지도 방식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선수가 많습니다. 닭가슴살만 먹는데 살이 안 빠지는 선수가 있었어요. 코치는 정신상태가 썩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심하게 운동을 시켰어요. 선수가 힘들죠.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어요. 그런데 힘든 이유가 코치의 의도가 아닙니다. 말투나 말할 때의 느낌이에요. 코치의 의도에 집중하고,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과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런 과정들에서 과거의 제 모습을 봤습니다.”

첫 학기에 전공을 바꾸는 것은 부담입니다. 고민 끝에 스포츠의학과 교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다행히 이해를 해주셨습니다. 공부는 힘들었지만, 할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농구 사제에서 공부 사제로 다시 만난 정지혜 교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박사 과정까지 밟은 것은 공부를 계속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동은 나를 위한 것 공부는 나와 남을 위한 것“한국말을 보고 한국말을 듣는데 한국말 같지 않아요.”

운동선수 출신으로 뒤늦게 공부했던 이들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김 박사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단어부터 익숙하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아는 단어를, 그녀는 해석부터 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듭니다. 다른 친구는 한 시간이면 되는 리포트 작성인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입니다.

“그래도 운동보다는 쉬웠어요. 아무리 공부해도 허벅지가 찢어질 것 같지는 않아요. 숨이 턱에 다다라 죽을 것 같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공부는 내가 노력한 그대로 결과가 나와요. 농구처럼…. 나에게 공을 주지 않아 속상할 일은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운동은 나를 위해 했습니다. 공부도 처음에는 나를 위해 했죠.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선수의 어려움을 제가 겪었잖아요. 얼마나 힘든지 제가 알잖아요. 상담으로 수입이 있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다른 돈벌이 수단도 생각해야 했죠. 지금은 수입이 괜찮습니다(웃음). 돌이켜보면…. 운명 같은 이끌림이었나 봐요.”

지금은 멘탈 코칭, 마음 건강 같은 단어들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공부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죠. 강한 정신력은 운동선수의 기본 덕목이었습니다. 힘든 가정사나 연애사, 징크스나 트라우마 등을 스스로 이겨내야 했습니다. 부담감도 스스로 이겨야 했습니다. 왜 힘든지,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이겨야 했습니다. 정신력도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이기지 못하면 나약한 정신력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운동선수도 사람인데요. 학생선수들은 아직 어린데요. 실수하면 상처받고, 실수가 반복되면 위축되는데요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스포츠심리상담은 “선수들이 지닌 역량을 최대한 뽐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김 박사는 이야기합니다.

“미국의 트레이닝 시장은 피지컬, 스킬, 멘탈이 분리되어 있고 그중에 멘탈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평균적으로 멘탈 트레이너의 상담료가 가장 높아요. 스킬이 준비되어 있어도 멘탈이 약해지면 모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정신력, 헝그리 정신만 강조했죠. 돈을 주고 상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선수 스스로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 생기면 팀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남이 아닌 나, 마음 어루만지기
김 박사가 만난 A 선수는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재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에서는 훈련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원인입니다. A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도 믿지 못했습니다. 실수하면 버려진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싸우며 10년 이상을 프로에서 뛰었고, 지금은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A의 바람은 선수들이 행복하게 운동하는 것입니다.

상담의 기본은 경청입니다. 「상담의 기술」 저자 클라라 힐(Clara. E. Hill)은 경청과 주의 기울이기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후 자기 이야기를 자기의 입으로 다시 들으며 그 감정을 깊게 경험하는 것이죠. 학교폭력 이슈가 있었던 B는 이 과정을 통해 성공적으로 부활했습니다.

때로는 기술적인 부분도 언급합니다. 쇼트트랙 선수 C는 코너를 도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자세를 낮추는 것이 필요했고, 자세를 낮추기 위해서 엉덩이를 내려야 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이 선수는 ‘엉덩이를 내려야 한다’는 자기 암시만 하면서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큰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운동선수들은 짧은 순간을 위해 긴 시간 땀을 흘립니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이잖아요. 많은 시람들이 지켜봅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 훈련의 성과를 모두 보여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워요. 스포츠심리상담사는 그것을 도와줍니다. 고된 훈련을 견디고, 훈련의 성과가 경기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슬럼프에 빠지고, 팀 내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이나 개인적인 고충까지 모두 상담합니다.”

“마음 코치예요.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훈련과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선수들이 가진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도와주죠. 스트레스와 불안을 관리하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게 대화합니다. 동기부여와 목표 설정을 지원하고요. 의사소통, 리더십, 갈등관리 등을 주제로 강연도 합니다.”

김 박사는 케이스포츠심리상담소 대표입니다. 초기에는 공유 사무실에서 목소리를 낮춰 상담해야 했습니다. 옆 사무실에 들리면 안 되니까요. 지금은 직원이 5명으로 늘었습니다. 내담자가 늘면서 사무실 크기와 직원 숫자도 늘었습니다. 심리학과 상담을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운동선수 출신으로 공부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김 박사의 경쟁력입니다.

“미녀 슈터 김연주 선수 아시죠? 스포츠심리상담을 하기 위해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레전드 이종애 선수는 저와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스포츠심리상담사는 운동선수 출신에겐 장점이 있습니다. 상담과 스포츠, 두 분야를 모두 잘 알 수 있잖아요.”

우리에게는 생소한 분야지만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큰 시장입니다. 그 이유일까요? 스포츠심리상담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문의가 많다고 합니다. 김 박사의 대답은 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그리고 가슴과 노하우입니다. 특히 가슴이 중요합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합니다. 그 마음에 공감하고 마음을 여는 것이 코칭의 시작입니다. 김 박사는 사연을 들으면서 ‘내가 이렇게 아팠구나, 내가 이래서 아팠구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상담받는 선수들은 ‘남이 아닌 나’였습니다.

선수 육성을 위해 피지컬 트레이너가 한 명 있으면 멘탈 트레이너도 한 명 있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먼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당장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라 전망이 밝다는 얘기도 덧붙입니다. 아울러 좋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숨은 조력자가 되라고 충고합니다.

“간혹 내가 유명해지고 싶은, 나를 드러내고 싶은 후배들을 봅니다. 그것도 좋아요. 그런데 본말이 바뀌면 안 되겠죠. 상담사는 숨은 조력자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내가 아니라 상담을 받는 사람이 먼저입니다.”



7개의 사과 상자, 코칭을 코칭하고 싶어요
상담사의 업무가 도전적이고 까다로울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업무 만족도가 높다고도 합니다. 팀과 선수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무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주부에게도 괜찮은 직업입니다. 그래도 고충은 있겠죠. 위기는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2021년에 번아웃이 왔어요. 대학 강의와 공부, 상담, 주부의 삶을 병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힘든 것이 하나둘 쌓인 거죠. 일에서 잠깐 도망쳤습니다(웃음). 그리고 저를 봤습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보람과 성취감이 더 컸습니다. 길게 방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을 알리는 것입니다. 스포츠심리상담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을 돕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합니다. 2급 이상 자격증이 있어야 상담을 할 수 있습니다. 김 박사에 의하면 대학 또는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스포츠와 심리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턴십이나 자원봉사 등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도 자산이 된다고 조언합니다.

“길을 찾는 후배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고 싶어요. 코칭을 코칭한다고 해야 하나?(웃음) 지금 직원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고요. 운동선수의 생활이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고, 제가 그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출신으로 자격증을 준비하는 후배, 소위 말해서 바닥을 경험했던 친구들에게는 저의 치유 과정도 알려주고 싶어요.”

농구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농구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농구선수의 연장선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든 마음을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기록하여 차곡히 모았습니다. 그 분량이 사과 상자 7개입니다. 상담받았던 선수들의 어려움이 사과 상자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사과 상자를 엽니다. 사과 상자에서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의 과거와 현재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몇 개의 사과 상자를 열었을까요. 모든 상자를 열었을 때, 그녀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글_조원규 컬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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