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이재범 기자] 신인선수 드래프트 지명 순위와 활약 기간은 보통 반비례한다. 지명 순위가 늦을수록 실낱 같은 기회를 잡지 못해 제대로 꽃도 못 피운다. 그렇다고 해도 뒤늦은 지명 순위를 딛고 주축으로 발돋움하거나 10시즌가량 활약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들을 만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회를 잡은 원동력을 들어보자. 네 번째는 창원 LG에서 아셈 마레이의 단짝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친 정희재(194cm, F)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 지명 순간
솔직히 그 때 들리는 말로는 1라운드 중후반에는 뽑힐 거라고 했다. 그래서 1라운드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1라운드에서 안 뽑혔다. 기분이 안 좋은 것보다 서운한 마음이었다.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나’라며 좌절감도 들었지만, ‘한 번 해보자’며 KCC에 입단했다. 또 10월 드래프트가 처음이었다. (2012년 1월 드래프트까지) 1년에 두 번 드래프트가 열려서 한편으로는 위안을 삼았다. 그 때 2군 드래프트도 있어서 KCC 신인들만 5~6명(실제 선발 인원은 총 7명)이었을 거다. KCC 팬들 사이에서는 스틸 픽이라는 기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큰 경기와 승부처에 강했던 대학 시절
(뜸을 들인 뒤) 많이 힘들었다. 1학년 때 사건 사고도 있고, 2학년 때는 경기도 많이 못 뛰고, 감독님도 너무 많이 바뀌어서 자리를 못 잡았다. 고려대의 암흑기 중 암흑기였다. 이민형 감독님께서 오시고, 이승현이 입학하면서 조금 편하게 농구를 했다. 승현이가 워낙 든든하게 잘 지켜줘서 제가 할 것만 하면 되었다. 이동엽, 김지후, 문성곤, 박재현, 승현이 등 후배들이 워낙 좋아서 저는 거기에 묻혀갔다. 대학에서는 외국선수가 없어서 골밑에서 자신감이 있었던 시기였다.
프로 데뷔 3번째 시즌부터 늘어난 3점슛
추승균 해설위원님께서 KCC 코치였던 시절 슛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려주셨다. 그 때 확 늘었다. 처음에는 3점슛도 날아가지도 않았다. 조금 힘들었다. 안 쏘다 보니까 쏘는 법도 모르고, 감도 없었다. 그냥 쏘라고 해서 쐈다. 연습을 할 때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추승균 해설위원님께서 야간이든, 운동 후든 저를 엄청 예쁘게 봐주셔서 되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면?
고려대가 명성이 높은 학교인데 암흑기를 거치며 승보다 패가 두 배 이상 많았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고, 창피했다. 승리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 스스로 발전을 등한시했다. 3점슛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농구대잔치에서) 3점슛을 안 넣어도 평균 25점을 넣을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요즘은 스킬 트레이닝도 많고, 자기 개발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들었다. 제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누군가를 찾아가서라도 3점슛을 연습할 거다. 지금 (대학시절로) 돌아가면 제 성에 찰 때까지, 제가 감이 좋을 때까지, 하루 500개는 기본으로 던졌던 상무 있을 때보다 더 연습할 거다.
대학 시절과 달라진 수비와 허슬 플레이
대학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제가 찾은 거다. 솔직히 기술이 뛰어난 선수도 아니고, 엄청 빠른 선수도 아니고, 점프를 엄청 많이 뛰는 선수도 아니다. 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뛸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까 답이 나왔다. 처음에는 미친 놈처럼 했다. 그 당시 애런 헤인즈가 절정이라서 그 선수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엄청 밀어가면서 수비했다. 그게 자양분이 되었다. 그렇게 경기를 5분, 10분 뛰니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과거에서 벗어난 원동력
냉정한 현실을 마주했다. 그 당시 정희재는 프로에서 경기도 못 뛰는 선수였다. 제가 자신 있던 골밑 플레이도, 피벗 플레이도 외국선수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나? 외국선수가 있으니까 그 이상을 못 하겠더라. 그래서 제 스스로 깨우쳤다. (다른 선수들도) 빨리 깨우쳤으면 좋겠다.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선수가) 너무 많다. 안타까운 게 거기서 멈춘다. 프로에 오면 다들 한 가닥 했던 선수들이다. 옛날(잘 했던 시절)에서 못 깨어 나고 머물러 있으면 선수로서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다. 더 이상 발전을 할 수 없다. 정말 많이 봤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들어와서도 많이 봤고, 대학에서 프로 와서도 많이 봤다. 지금도 제 주변 지인 중 한 명은 옛날에 빠져 산다. 그런 선수들을 보면 거기서 빠져나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최고 영향을 준 외국선수
아셈 마레이다. 저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그럴 거다. 마레이는 워낙 이타적이고 그러면서도 자기 할 걸 다 한다. 외국선수 중에서 그런 선수를 찾기 쉽지 않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 다른 리그를 가기 위해서 자신의 기록이 중요한 외국선수가 많다. 마레이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어시스트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며 좋아한다. 코트 밖에서도 최고다. 인성도 좋다. 조금 아프면 기록이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안 뛰는데 그런 것도 없다. 몸 관리를 진짜 잘 한다. 농구에 대한 태도도 우리끼리 이야기를 할 때 농구를 잘 배웠다고 한다. 진짜 사람이 괜찮고 농구에 대해서 진심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농구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하게 기다리면 기회는 몇 번인지 모르지만, 1~2번 온다고 생각한다. 되게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 기회를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다는 거다.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언제, 어디서, 당장 다음 경기에서 누가 부상을 당하면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항상 몸 관리를 잘 하고, 농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기회가 왔을 때 뭔가 화려한 것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슛을 넣거나 패스를 기가 막히게 하거나 이런 걸로 보여주려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팀마다 에이스가 있고, 외국선수도 있다. 자신의 팀에서 부족하거나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자신이 포워드라면 팀 내 포워드들에게 부족하고 없는 게 뭐가 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저는 다른 팀 농구도 많이 본다. 일단 농구를 틀어놓는다. 슛을 넣은 것만 보지 않고 슛 넣는 과정을 보고, 수비도 과정을 보면 농구의 길이 보인다.
BONUS ONE SHOT
정희재가 KCC에서 배운 것
정희재는 2년 전 즈음 슛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 왕복 4시간 거리의 추승균 SPOTV 해설위원을 찾아가 일주일에 3번씩 훈련하며 예전 슛감을 찾은 바 있다. KCC 시절 선수와 코치-감독의 인연 덕분이다. 그렇다면 LG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자양분을 쌓은 KCC에서 6시즌을 보내며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을까?
정희재는 “농구 외적인 걸 많이 배웠다. 지금은 LG에서 전력분석을 하는 강병현 형, 하승진 형, 이현민 형, 신명호 형, 김태술 형 등 좋은 형들이 되게 많았다”며 “얼마 전에 양홍석이 힘들어할 때 ‘뭐 먹고 싶냐, 치킨 사가지고 갈게’하고 집으로 찾아갔다. 홍석이가 ‘이런 걸 누구에게 배워서 잘 하냐?’고 물어보더라. ‘(KCC 있을 때) 형들에게 다 배웠다. 너도 이런 걸 배웠으면 좋겠다. 너도 군대 갔다 오면 고참이 될 거니까 후배들에게 이런 걸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KCC에 있으면서 후배들을 잘 챙기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걸 배웠다”고 했다.
#사진_ 점프볼 DB(박상혁,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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