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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금창영’의 깨 쏟아지는 러브스토리 “우리 가족 이대로”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4-12-14 01: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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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사랑에 농구, 토끼 같은 아이들까지 다 가졌다. 한때 은퇴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걸었지만, 정창영(35, 193cm)은 KCC로 이적한 후 기량이 만개하며 농구선수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가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며 시상대에 오르고, 한 팀의 주장까지 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애프터스쿨 출신 가수이자 아내 정아의 내조도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소금창영’이라 불리는 등 KCC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정창영 부부의 인터뷰 현장에서는 깨가 쏟아졌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포차에서 인연이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창영 2015년이었어요. 제가 제대 후 복귀한 시즌이 끝난 직후였거든요.
저는 제 지인들, 와이프도 지인들끼리 포차를 찾았는데 제 지인과 와이프 지인이 아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됐죠. 저는 당연히 와이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지만, 와이프는 제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어요.
정아 제가 아는 농구선수는 딱 농구대잔치 세대까지였어요. 이상민 코치님, 서장훈, 우지원 선수 정도만 알고 있었죠.

연락을 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창영
아내가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함께 찾아봤는데 결국 못 찾았죠. 그러다 자리 정리하고 나가기 전 제가 마지막으로 핸드폰 찾으셨냐고 물어봤어요.
정아 그게 (정)창영 씨가 저한테 한 첫마디였어요. 전화해보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 번호를 받아갔죠.
창영 다 계획이었습니다(웃음).
정아 핸드폰은 결국 못 찾았고, 일 때문에 다음날 아침 일찍 똑같은 핸드폰을 새로 샀어요. 그때 처음으로 전화 온 사람이 창영 씨였죠.

어떻게 해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건가요?
창영
서로 살던 집이 가까웠어요. 제가 시즌이 끝나서 휴가 중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먼저 같이 밥 먹자고 연락했죠. 아내가 워낙 바쁠 때라 만나면 주로 한강에 놀러갔어요. 차 안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얘기를 많이 나눴죠. 몇 번 밥 먹고 나서 제가 먼저 만나보자고 얘기했어요. 원래 애프터스쿨의 ‘첫사랑’이라는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제가 대학생일 때 애프터스쿨이 워낙 인기 많은 걸그룹이었거든요.
정아 제가 누구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20살처럼 뿅~하며 ‘와, 멋있어’ 이런 식으로 빠지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웃음). 계속 대화하다 보니 잘 통한다는 게 느껴졌는데 연하라는 점이 걸렸어요. ‘왜 하필 연하일까’ 싶었죠. 그것도 5살이나…(웃음). 결혼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은 없었지만, 저는 미래를 생각해야 할 나이긴 했거든요. 연하는 만나고 싶지 않아서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창영 씨의 진중한 모습이 보였어요. 대화가 잘 통했고 어리다는 느낌도 안 들었죠. 열정이 느껴져서 제가 배울 게 많을 것 같았어요.

연애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창영
제 지인들은 안 믿었어요. ‘만나다 말겠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요. 결혼까지 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예요. 저희가 진지하게 만나는 걸 보며 놀라는 사람이 많았죠. (소개팅 주선해달라는 선수는 없었나요?)많진 않았어요. 팬으로서 같이 모여서 놀고 싶다고 하는 친구들은 있었죠. 그래서 주말에 삼삼오오 모인 적은 종종 있었어요.
정아 애프터스쿨 멤버들도 많이 놀랐어요. 아무래도 농구선수라고 하면 생소했거든요. 멤버들도 농구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창영 씨 지인들처럼 ‘만나다 말겠지’ 싶었을 거예요. 결혼한다고 하니 진짜 놀라더라고요. 멤버들 가운데에는 제가 가희 언니에 이어 2번째로 결혼했어요.

언제 결혼을 결심했나요?
창영
교제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였어요. 대화도 잘 통하고, 배려도 많이 해줬지만 연예계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내조를 너무 잘해주는 모습을 보고 결심했어요. 사실 소문, 인터넷으로 접한 연예인에 대한 선입견도 조금 있었거든요. 아내도 운동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을 거고요. 그런데 아내는 제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연예인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바깥에서 연예인이라고 안 좋게 행동하는 게 전혀 없었어요. 어른들에게 잘하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고요.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나요?
창영
어설프게 했던 것 같아요.
정아 뭐가 어설퍼~(웃음).
창영 친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본 끝에 제일 무난한 걸로 준비했어요. 63빌딩 레스토랑에 이벤트를 할 수 있는 룸이 있더라고요. 영상 관련 일을 하는 친구에게 저희 사진, 제가 쓴 편지로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꽃다발, 십자가 목걸이를 선물로 준비했죠. 아, 둘 다 크리스천이거든요. 이것도 결혼을 결심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어요.
정아 저는 전혀 눈치를 못 챘어요. 제가 중국 일정을 소화한 후 돌아온 날이었는데 꼭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피곤한데 말이에요(웃음). 제가 음식 때문에 중국 일정 소화하는 건 유독 힘들어하는 편이거든요. 63빌딩에 한 번도 안 가본 맛집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갔는데 프러포즈를 해서 깜짝 놀랐죠. 편지 읽다 눈물이 났어요. 그 편지는 지금 봐도 눈물 나요.

편지에는 어떤 내용을 썼나요?
창영
결혼 날짜는 이미 잡은 상태였거든요. 결혼해줘서 고맙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진심을 담았어요. 제가 LG에서 제일 밑바닥을 치고 있던 시기였거든요. 그래도 아내는 항상 할 수 있다며 힘을 실어줬어요. 저는 뭐에 꽂히면 굉장히 깊게 들어가는 편이에요. 예민해서 잠도 못잘 때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아내는 정반대예요. 저는 부정적, 아내는 긍정적이었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준 사람이어서 프러포즈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LG 시절 창원체육관에도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나요?
정아
딱 한 번이요. 2층인가, 3층인가…. 아무튼 제일 위에서 봤어요. 아무도 못 알아보게 꽁꽁 싸매고 혼자 기차 타고 보러 갔어요. 그런데 너무 위여서 그냥 집에서 TV로 보는 게 더 잘 보이더라고요(웃음).
창영 벤치에 앉아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래도 선수라면 ‘오늘은 단 몇 분이라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기대하며 준비하거든요. 여자친구도 멀리까지 왔는데 조금이라도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기억에 아마 그 경기에서 아예 못 뛰었을 거예요. 그래서 속상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LG의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컸을 것 같아요.
정아
지금도 다시 떠올리기 힘든 순간이에요.
창영 연애할 때도 안 좋았지만, 2018년에 결혼한 이후에는 더 안 좋아졌어요. 2018-2019시즌 끝나면 FA가 되는데 엔트리에 못 들어간 날도 많았거든요. 아내 뱃속에 첫째가 있어서 어떻게든 버티자는 심정이었어요. 뛰는 게 목표가 아니라 엔트리라도 27경기 채우자는 마음이 강했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FA가 되고 싶었거든요. 누구를 탓하고 싶진 않아요. 제 기량이 받쳐주지 않았고, 못했기 때문에 경기도 못 뛴 거죠. 그래서 새로운 환경,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27경기를 채웠고, 은퇴할 각오로 FA가 됐어요. 아무도 안 찾을 수 있다는 것까지 각오했어요. 한 팀이라도 찾아준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었죠.
정아 결혼을 결심했을 때부턴 아무래도 미래,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 안 할 수 없었어요. 물론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겠지만, 창영 씨가 그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어요. 연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었죠. 그래도 농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느껴졌었거든요. 무엇 때문에 기량을 못 펼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영 씨의 농구에 대한 열정을 알아봐주는 팀이 있을 거란 확신은 있었어요. 저도 창영 씨만큼은 아니겠지만, 힘든 시간을 겪어본 경험이 있어서 너무 힘들어할 때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뱃속에 있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커 보이는데 너무 힘들면 은퇴해도 된다고, 꼭 농구로 돈 안 벌어도 된다고 했죠. 부담 때문에 모든 걸 참아내며 버티진 말라고 했어요. 정말 힘들면 내려놓으라고 했고, 창영 씨는 정말 은퇴를 각오하고 FA가 됐던 거였어요.

KCC가 영입의향서(3년 보수 1억 2000만 원)를 제출했습니다.
정아
KCC와 계약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그 마음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동안 아무 것도 못 보여준 선수의 기량을 알아봐준다는 게 힘든 일이잖아요. 벤치에만 앉아있는 선수를 데려간다는 건 그분들도 큰 결정을 해야 하는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었고요. 적은 돈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창영 씨를 믿어준 KCC에 감사했고, 그것만으로도 이전까지 힘들었던 마음이 사라졌어요. 앞으로도 KCC에 감사한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창영 그때만 해도 원소속팀 우선 협상기간이 있었어요. 다행히 LG와는 시장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에 대한 얘기가 잘 됐어요. LG 측에서 미안하지만 좋은 팀 만나서 잘 될 거라고 격려해주셔서 시장에 나갔죠. 영입의향서를 받는 기간이 2주 정도 되는데 진짜 피가 마르더라고요. 나가서 선배들이랑 술만 먹었던 것 같아요. 2주 내내 폐인처럼 지냈죠. 2주가 지난 후 한 번에 발표되는 방식이었지만, 혹시나 해서 잠도 못 자고 핸드폰만 보고 있었어요. 모르는 번호로 전화와도 다 받았는데 대출 상담 전화더라고요(웃음). 마지막 날 KCC에서 영입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감사했죠. KCC 가면 정말 죽기 살기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아무래도 운동선수인 남편을 내조한다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아내로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아
멘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로선수이기 때문에 몸은 스스로 잘 챙겨야 하죠. 이건 남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린 아이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멘탈은 혼자 해결하기 힘들 때도 있거든요. 예전에는 경기 끝나면 장문의 피드백을 보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창영 씨가 정말 많이 성숙해졌다는 걸 느껴요. 개인적으로 안 풀릴 때 속상해하는데 그걸 털어내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많이 앞당겼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피드백 안 보내고 모든 걸 정리한 후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입장이에요. 힘든 시간들이 지금의 창영 씨를 만들었죠. 저도 창영 씨도 그 시간들을 통해 강해진 것 같아요.

애프터스쿨에서도 멤버들의 고민 상담을 담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정아
맞아요. 제가 원래 상대방 얘기를 잘 들어주는 성격이거든요. ‘내 사람이다’ 싶으면 제 일처럼 들어주고 조언도 냉정하게 하는 스타일이에요. 멤버들부터 회사 대표님, 매니저 상담까지 도맡았죠.
창영 콜센터였어?(웃음)
정아 그렇지 않아도 멤버들이 상담비 1만 원씩만 받았어도 부자 됐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부산 홈 개막전에서 커피차를 준비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또 할 생각도 있나요?
정아
당장은 없어요.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후 첫 홈경기였잖아요. 그래서 구단 관계자들도 동선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선수들, 스태프, 중계팀, 기자님들에 팬들까지 드실 수 있게 준비했는데 중간에 차가 한 번 이동하는 과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팬들에겐 조금 늦게 전달됐어요. 그럼에도 많은 팬들이 받으시고 좋은 기운도 주셔서 행복했지만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저도 하는 일이 있는 데다 육아도 신경 써야 해서 당분간은 생각이 없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 해보고 싶어요.

‘출발 드림팀’에 출연한 영상을 보니 높이뛰기를 잘하시더라고요. 원래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인가요?
정아
네. 운동을 잘하는 편이었어요. ‘아육대’에서도 달리기 1등한 적이 있어요. 한 번은 보라(씨스타)와 달리기 결승을 치러야 했는데 예선 기록은 제가 1등, 보라가 2등이었죠. 그런데 제가 아이돌 중에서는 나이가 있는 편이잖아요(웃음). 그날은 하필 야외에서 촬영하는데 여름이어서 너무 더웠어요. 그래서 결승을 포기했어요. 그때 보라가 ‘육상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죠.
창영 정신력이 약하네~
정아 그건 정신력 문제가 아니고~! 저는 ‘아육대’ 보단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이 컸습니다(웃음).

‘복면가왕’, ‘문명특급’에도 출연했는데 애프터스쿨 활동이나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정아
항상 생각나죠. 기회만 된다면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문명특급’은 임신 5개월 차에 나가서 예쁘지 않았고, 춤도 제대로 못 췄어요.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크게 남아있어요. 지금까지는 그게 저의 마지막 무대거든요.

연애 초기만 해도 농구에 대해 잘 몰랐을 텐데 현재는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창영
어우, 살벌합니다.
정아 어머님이 놀라시더라고요. 농구 감독해도 되겠다고 하세요(웃음). 그 정도로 굉장히 디테일한 피드백을 보내거든요.
창영 경기 끝나면 몇 쿼터 몇 분쯤 왜 옆에 비었는데 패스 안 하냐, 슛 안 던지고 머뭇거리냐고 해요. 결혼 5년 차인데 연애 시절까지 포함하면 8년이니 이제 빠삭해질 때가 됐죠. 그래서 요새 좀 피곤합니다(웃음).

드디어 기량이 만개한 남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정아
언젠가 이 순간이 꼭 올 거라 생각해왔어요. 창영 씨라는 사람과 실력을 믿었거든요. 못 뛸 때도 농구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는지 옆에서 봐오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본인이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좋아요. 물론 경기가 안 풀려서 힘들어하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커요. 불만 갖지 말라고, 다시 준비하면 된다고 말해줘요. 창영 씨는 다른 선수에 대한 얘기는 일절 안 해요. 오로지 본인의 경기력, 본인이 실수한 부분만 얘기해요.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경기가 안 풀릴 수 있잖아요. 저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얘기해줘요.

2020-2021시즌에는 데뷔 후 첫 정규리그 우승도 경험했습니다.
창영
너무 좋았죠. 프로에 온 후 첫 우승이었거든요. 제가 어느 정도 공헌했다는 점도 기뻤고, 그 시즌은 여전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전주체육관은 원정 팀 선수들에게 부담스러운 경기장이었습니다. 그만큼 전주는 열정적인 팬이 많은 도시였는데 떠나게 됐어요. 이 자리를 통해 한 번 더 전주 팬들에게 인사를 남긴다면?
창영
뛴 시즌이 많진 않았지만, 저는 전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어요. 전주 KCC에 온 후 잘 풀리기 시작했잖아요. 팬들이 너무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고, 소금이라는 별명도 만들어주셨죠. (원래 음식도 짜게 먹는 편인가요?)그렇긴 해요. 저는 돼지고기도 소금 찍어 먹어요(웃음). 항상 마음 한편으로 전주 팬들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이렇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기게 돼 아쉽기도, 죄송하기도 해요. 저는 전주 KCC의 마지막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힘들 때마다 위로도 해주셔서 전주 팬들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아직 몇 경기 치르지 않았지만, 부산 팬들의 화력은 어떤가요?
창영
부산 팬들도 전주 팬들 못지않게 열정적이에요. KT가 연고지로 두고 있을 때 원정경기 치르러 갔을 때도 느낄 수 있었죠. 전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한데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기대에 못 미치고 있잖아요. 팬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주신다면 좋은 경기력,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요.

워낙 많은 기대를 받으며 맞이한 시즌이었습니다. 아직 기대치를 밑돌고 있는데 1라운드를 돌아본다면?
창영
외부에서 ‘슈퍼팀’이라고 하지만, 막상 저희 선수들이 다 함께 훈련하며 손발을 맞춘 시간은 많지 않아요. (이)승현이와 (라)건아는 대표팀에 차출됐고, (송)교창이는 상무에 있었죠.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고, 그게 경기력으로 나왔어요. 경기를 거듭하며 손발이 맞아 가면 정말 무서운 팀이 될 거라 생각해요. 너무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실망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교창이도 합류한 만큼 점차 좋아질 겁니다. 선수들이 코트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초반이라는 걸 감안해도 이근휘와 함께 3점슛 성공률 공동 1위(50%)인 게 눈에 띕니다.(11월 22일 기준)
창영
제가요? 아, 그랬군요. 저희 팀에는 공격적인 면에서 월등한 기량을 지닌 선수가 많아요. 그래서 수비, 궂은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허)웅이, (최)준용이에게 수비가 몰려 오픈 찬스가 생길 때만 던지려고 하죠. 그러다 보니 성공률도 잘 나온 것 같아요. 경기가 안 풀릴 때는 저도 가끔씩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직접 겪어본 최준용은 어떤 선수인가요?
창영
이전까지 이렇다 할 접점은 없었는데 같이 생활해보니 제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더라고요. 농구에 대한 열정, 승부욕은 그 누구 못지않아요. 저도 지는 걸 싫어하는데 준용이는 굉장히 싫어하더라고요. 성격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대화가 잘 통해요. 개인보단 팀을 더 중요시 하는 선수라는 것도 느꼈어요. 팀 분위기 띄우는 역할도 먼저 하고요. 분위기 메이커 역할까지 해줘서 여러모로 고마운 동생이에요.

앞으로 남은 선수생활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창영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건 없지만, 일단 큰 부상 없이 오랫동안 코트에 서고 싶어요. (함)지훈이 형, (허)일영이 형처럼 몸 관리를 잘해서 많은 나이에도 잘하는 선배들이 있잖아요. 저 또한 그런 형들처럼 오랫동안 코트에 있는 게 목표입니다.

이미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앞으로는 어떤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까요?
창영
아내에게 미안한 게 운동선수다 보니 집안에 신경을 많이 못 써주고 있어요.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겨서 지방에 더 오랜 기간 동안 머물러 있기도 하고요. 내조하느라 고생이 많은데 그래도 두 달 동안 휴가 받으면 가정에 충실하려 하는 편입니다(웃음). 저는 더 바랄 게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아이들 건강하게 자라고, 아내가 하는 일 잘 됐으면 해요.
정아 저도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주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은 과정을 거쳐 만든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창영 씨는 팀과 농구, 가정에 다 충실한 사람이에요. 저 역시 여기서 더 바랄 게 없어요.

혹시 셋째 계획은?
창영
아, 전혀 없습니다. 애초부터 계획이 둘이었어요. 이제 그만 해야죠. 너무 힘드네요(웃음).
정아 (1초도 망설임 없이)저도 없어요.

아무래도 농구인 가족이다 보니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 농구를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자녀들이 농구를 하고 싶어 한다면?
창영
저는 시켜서 한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 속에 농구가 있었고, 누나도 농구를 하고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했는데 아직까진 저희 아이들이 농구하는 것에 대해선 생각이 없어요. 아내도 연예인 시킬 생각은 1도 없고요. 또 모르죠. 나중에 더 컸을 때 아이들이 흥미를 갖게 될지…. 그런데 둘째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노래랑 흥이 장난 아니에요. 임신한 상태로 ‘문명특급’에 나갔던 게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가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요?
창영
사실 예전에 아내를 통해 섭외가 몇 차례 들어왔는데 제가 다 거절했어요. 제가 LG에서 한창 안 풀릴 때였는데 ‘애프터스쿨 출신 정아의 남편’으로 알려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농구선수 정창영으로 당당하게 제 이름을 알리고 싶었죠. 아내도 제 마음을 다 존중하고 이해해줬어요. (지금 섭외가 돌아온다면?)“감사합니다” 하고 나가야죠(웃음).

#사진_문복주, 최창환 기자, 정창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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