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등의 이유로 본격적으로 뛴건 고2 때
감독님께 인정받고 팬들께 사랑 받고 싶어요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낭중지추(囊中之錐). 낭(囊)은 주머니입니다. 추(錐)는 송곳입니다. 직역하면 ‘주머니 속의 송곳’입니다. 가려져 있어도 그 뾰족함이 드러난다는 의미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의미입니다.
이근준이 그랬습니다. 길거리 농구를 즐겨하던 소년은 중학교 2학년 때 엘리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기본기가 부족해 유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유급을 선택한 의미가 퇴색됐습니다.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 근처 농구장에서 혼자 연습해야 했습니다. 팀에 합류한 후에도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습니다. 대회가 없었습니다. 부상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부상에서 복귀한 이근준은 2021년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소속팀 침산중을 4강에 올렸습니다.
대구 출신의 소년은 서울에 왔습니다. 이번에는 전학에 따른 징계로 1년을 쉬었습니다. 이근준은 2023년 12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본격적으로 뛴 건 고등학교 2학년 때가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년으로 충분했습니다. 이근준은 고려대와 연세대를 포함한 12개 대학 감독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최고의 유망주가 됐습니다.
2024년을 여는 춘계연맹전이 열리기 전, 고교 유망주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11개 대학 감독이 이근준을 언급했습니다. 중하위권 대학 감독 1명만 이근준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학교에 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 본격적으로 뛴 건, 고등학교 2학년이 처음
작년 5월, 경복고는 연맹회장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근준은 이 대회 결선 4경기에서 평균 18.8점 14.8리바운드로 활약했습니다. 모든 경기에서 3개 이상 3점 슛을 넣었습니다. 2학년 이근준은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이근준은 팀을 연맹회장기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대학 진학 대신 KBL 드래프트 참여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U18 대표 박정웅(홍대부고)과 이찬영(송도고)의 얼리엔트리 선언이 이어졌습니다. 고교 졸업 예정자 중 가장 먼저 얼리엔트리를 선언한 이근준을 경복고 체육관에서 만났습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점프볼 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경복고 3학년 포워드 이근준입니다. 명문 경복고의 주장으로서 연습할 때와 경기할 때나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이근준 선수의 얼리엔트리 선언이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왜 프로를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대학을 먼저 가서 더 배우고 성장한 뒤에 프로를 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왕중왕전 결승이 끝나고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프로를 가기 위해 대학에서 배우는 것인데, 대학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프로가 목표면 지금 빨리 가서 부딪쳐야 남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대학에서 인정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의외네요.
대학에서 다칠 수도 있고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습니다. 프로는 (대학보다) 형들이 농구를 오래 하셨습니다. 부상이나 슬럼프 같은 것이 왔을 때 더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감독님, 코치님, 형들에게 잘 물어보고 잘 받아들이면 더 빨리 농구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학의 낭만 같은 것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나요?
즐기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웃음).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꿈처럼 생각하는 것이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입니다. 정기전을 꼭 뛰어보고 싶었습니다.
▽ 그런데 얼리엔트리를 결정했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처음에는 너무 빠르지 않나 생각도 했습니다. 너무 큰 결정을 했고, 다른 사람들이 안 좋게 비판할까 두렵기도 했어요. 왜 미리 말 안 해줬냐는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 친구와 선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큰 관심은 처음이라 스스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프로에서 처음부터 배워야지 생각했는데, 얘는 뭘 못하는데, 얘보다 얘가 더 나은데 같은 얘기를 들으니까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그래서 추계연맹전은 더 보여주고 싶었는데, 실수만 더 많이 했어요(웃음).
▽ 이근준의 장점과 과제는 무엇인가요.
신장이 큰 편에 슛 터치가 좋고 기동력이 좋은 선수, 수비도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안 좋게 보면 공격할 때 슛 말고 (다른 공격 기술이) 부족한 선수일 수도 있습니다. 안일하게 플레이할 때도 있고, 드리블과 시야도 아직 부족합니다. 농구를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포스트업과 2대2 플레이만 했습니다. 드리블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와서도 드리블 잘하는 형, 동기들이 있어서 드리블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 단점만 많네요(웃음). 프로에서 경쟁할 수 있겠어요?
네. 할 수 있습니다. 경기 할 때는 물론이고 연습할 때도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는 말도 듣습니다. 요즘은 야간에 드리블 연습을 많이 합니다. 코치님이 자세나 기술을 알려주셔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 임성인 코치는 멘탈이 걱정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사실 멘탈은 강하다고 자부했습니다. 부상 당했을 때도 어떻게든 이겨냈어요. 뛰고 싶었고, 그것만 보고 노력했습니다. 3학년이 되고, 증명하고 보여줘야 하는 시기가 되자 압박감이 생겼습니다. 잘 이겨내지 못한 것 같아요. 코치님이 안되는 걸 하려고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보여주면 더 좋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경기 중에는 잘하는 것을 더 많이 하고 훈련할 때는 안되는 것을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이근준을 지도하고 있는 경복고의 임성인 코치는 이근준에 대해 “신장, 스피드, 탄력 다 좋아요. 슛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합니다. 다만 구력이 짧죠. 멘탈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물가에 자식을 내놓은 느낌이고 걱정이 앞섭니다”라고 기대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잘할 거라 믿지만, 멘탈이 무너질 때 본인이 이겨내야 하는데…. 아마추어보다 프로는 더 냉정해요. 시련이 있을 겁니다.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전희철 SK 감독과 오재현 얘기도 꺼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선수들이 있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 그럴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너희가 (오)재현이처럼 노력했어?’”라는 전희철 감독의 말을 전하며 오로지 농구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이근준이 가장 좋아하는 팀도 서울 SK입니다.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SK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봤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른 팀 경기도 다 챙겨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리엔트리를 결정한 후로는 ‘내가 코트에 있으면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생각도 많이 합니다. 이근준은 “제2의 송교창, 제2의 서명진이 아닌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포부가 있습니다. 특별히 가고 싶은 팀은 없습니다. 다만 원하는 포지션은 있습니다. 2번, 3번으로 뛸 수 있는 팀에 가기를 원합니다.
슈터 출신 조성원 전 창원 LG 감독은 이근준의 경기 영상을 보고 “슛이 괜찮다. 슛 폼은 나무랄 데가 없다. 올라가는 밸런스가 괜찮고 릴리즈도 빠르다”라고 칭찬했습니다. 빠른 3점 슛 릴리즈는 이근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공을 잡고 슛을 올라가는 동작까지 매끄럽다는 평가입니다. 짧은 구력에도 이근준이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 조성원 전 감독 "슛 폼은 나무랄 데가 없다"
맨발 194센티의 신장도 슈터로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신장만 큰 것이 아닙니다. 잘 달립니다. 가볍게 인게임 덩크슛을 성공할 정도로 탄력도 좋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수비입니다. 지난 동계 훈련과 비교해 이근준의 수비는 일취월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임 코치의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주문도 수비와 3점슛입니다. 3&D 자원은 KBL은 물론 NBA도 희소성이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온볼 공격, 시야와 패스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임 코치는 이근준의 3점슛 성공률이 포물선 높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얘기합니다. 지난 동계 훈련부터 임 코치는 포물선 높이를 일정하게 가져갈 것을 강조했습니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습니다. 이근준은 설렘과 긴장으로 11월 15일 KBL 신인선수 지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근준의 바람은 작지 않습니다. “저를 보고 농구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려한 플레이보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건실한 플레이어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감독에게 인정받고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입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이제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이 되기를 꿈꿉니다.
조원규_점프볼 칼럼니스트 chowk87@naver.com
#사진_점프볼DB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