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최서진 기자] 마흔, 새롭게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2007-2008시즌부터 프로에서만 17년을 보낸 KT 김영환은 2022-202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자신은 특출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프로는 이미 특출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무대다. 그곳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17년을 보낸 김영환은 이제 코치로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6월 7일 진행됐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4월 한 달 동안 쉬었다. 가족들이랑 여행도 다녀왔다. 일본에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정말 가고 싶어해서 다녀왔다. 난 죽을 뻔했다(웃음). 신장 제한은 없는 것 같더라. 다 태워주더라. 또 아이들을 아침에 등하교시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코치 일은 5월부터 시작했다. 나와서 외국선수 알아보기도 하고 영상도 보면서 여러 일을 하고 있다.
긴 선수 생활을 했는데, 오래 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엄청난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게 아닐까(웃음). 솔직히 슛이나 수비나 특출나게 타고난 부분이 있었다면 재능에 취해서 덜 성실하지 않았을까? 노력을 성실히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자존심이 세기도 하고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보니 사생활을 포기하면서 운동에 집중했다.
주장을 오래 맡았는데, 그 무게는 어느 정도였나?
후배들에게 솔선수범하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솔직히 남들처럼 쉬고 싶기도 했지만, 내가 하지 않는데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적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스로 더 엄격하게 다뤘다.
돌아보면 자신은 꼰대 주장이었나?
그렇다(웃음). 답답하지. 보기만 해도 답답한 주장이었다. ‘저 형은 말이 안 통하는 형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내도 내게 ‘집에서만큼은 편하게 하면 안 되냐. 답답하다’라고 말한 적 있다(웃음). 주장이라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는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었다.
긴 선수생활, 드래프트 때부터 이야기해보자면?
대학교 때 부상 이슈로 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에 뽑혔다. 내 실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밖에서 보는 나랑 내가 생각하는 나랑 다를 수 있으니 인정을 해야 하는데, 어린 나이에 상처가 되기도 했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래서 독기를 품고 해야겠다 했는데 전자랜드에서 갑자기 트레이드를 진행해 부산 KTF(현 KT)로 가게 됐다. 두 번째로 자존심이 상했다. ‘한 번 보여줄게’라는 생각을 했다.
2년 차에 무릎 수술을 했는데?
두 번째 시즌에 무릎이 너무 아프더라. 병원에 갔는데 재활이 안 되면 은퇴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멘탈이 완전히 나갔다. 추일승 감독님이 외국에 자료를 한번 보내보자고 하셨다. 당시 축구 선수들이 독일로 가서 수술을 많이 받기도 했고, 괜찮겠다 싶어서 진료를 봤다. 다행히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노력에 따라 80~90%까지 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 희망을 가졌다.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무릎 부상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군생활을 마치고 2011-2012시즌에 돌아왔을 때는 어땠나?
상무에서 돌아왔을 때 감독님과 코치님의 기대가 크셨던 것 같다. 상무에서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해도 부족했고, 경기 감각도 떨어졌다. 시즌이 끝나고 팀에 가드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누가 트레이드 되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 나였다. KT는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멤버였다면, LG는 리빌딩을 하는 팀이었다. 제대 후 너무 안 좋았으니 환경을 한번 바꿔서 도전해보자고 생각했다.
창원 LG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갔는데 다 어리더라(웃음). 백인선 형을 빼면 29살이었던 내가 고참이었다. 그래서 주장을 맡았다. 돌아보니 리빌딩과 연이 있는가 보다. 운 좋게 (김)종규를 뽑고 (문)태종이 형이 오면서 2013-2014시즌 우승도 했다. 그러나 내가 안 좋을 때가 있었다. 3점슛이 21개 연속으로 안 들어갔다(2016-2017시즌). 이런 거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15개 지나니까 ‘와…큰일 났다’ 이런 느낌이 들면서 슬럼프가 약간 왔던 것 같다. 팀 성적도 안 좋았고, 김진 감독님 마지막 해이기도 했고, 복합적으로 얽혔던 시즌이었다.
2016-2017시즌 중반 KT로 다시 돌아오게 됐는데?
트레이드가 끝나가는 타이밍에 외박을 다녀왔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부르시더라. 주장이니까 미리 알려주시나 보다(웃음) 하면서 들어갔는데, 다들 내 눈을 못 마주치시더라. 앉았더니 나라고 하시는데, 멍해졌다. LG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더군다나 트레이드 상대가 (조)성민이 형이었다. 큰일 났다 싶었다(웃음). 그때가 농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다. 잠을 정말 못 잤다. KT로 이적하면서 LG에게 받은 1라운드 지명권으로 허훈과 양홍석을 뽑을 수 있게 됐다. LG가 플레이오프에 떨어지면서 1라운드 2순위 지명권을 얻게 됐다. 1순위로 (허)훈이를, 2순위로 (양)홍석이를 뽑게 되면서 팀이 리빌딩 됐다. 우승까지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리빌딩하는 게 내 숙명이었나?(웃음). 그래도 KT에서 어린 좋은 선수들과 함께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7년 2월 4일 LG 상대로 노룩 3점 훅슛 버저비터를 꽂아 역전승을 이끈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인가? 그때 2016-2017시즌 ‘샷오브더시즌’ 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 그 경기가 어떻게 보면 KT의 리빌딩을 만든 경기였다. 또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었다. 드래프트 전까지 마음이 불편했는데 1,2순위가 나오면서 이제 내가 못해도 욕을 안 먹겠구나 싶었다(웃음). 내가 못해도 훈이나 홍석이가 잘하겠지. 경기 당시에는 좋기도 했는데, 끝나고 보니 LG에서 생활하던 선수들이 생각나고, 잘 챙겨주셨던 김진 감독님과 강양택 코치님 생각이 나면서 죄송하기도 했다. 계속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그래서 그 경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정말 만감이 딱 교차하는 그런 경기인 것 같다.
선수 생활을 돌아봤는데, 어떤 선수였다는 생각이 드는지?
음…그래도 좋은 선수들과 성실하게 운동해왔다. 좋았다라는 것보다는 농구선수라는 도전하는 직업을 택하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성실하게 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운동을 많이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농구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다른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성실한 선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흔’ 코치 김영환의 첫걸음
어린 날의 김영환은 마흔에 뭘 하고 있을까? 상상했을 때, 최고의 시나리오는 은퇴 후 프로 지도자였다. 먼 훗날의 꿈같은 일을 이룬 마흔 김영환의 새 출발은 어떤 그림일까. 아직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와 같다.
은퇴는 어쩌다 결심하게 됐나?
팀에 큰 변화가 있는 상황에 구단에서 지도자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고참이다 보니 팀 변화에 감독님이 (나를) 부담스러워하실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어린 선수들과 경쟁해서 출전 시간을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래서 제안에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좀 짧게 보기보다는 멀리 본다고 생각했다. 이제 마흔이니 새롭게 시작하기 딱 좋은 시기다(웃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가족들을 초대한 걸로 알고 있다.
사람이 느낌이 있지 않나. 원래 아내가 경기장을 잘 안 온다. 몸싸움이 심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니 자주 안 오는데, 이상하게 초대하고 싶더라. 아내도 오고 싶어했다. 마지막 경기니 초대했다. 근데 경기 전날 다쳐버렸고 수술에 들어갔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빠가 운동선수였다는 걸 다 아는 나이라 괜찮다. 이제 코치가 된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선생님 된다고 이야기했더니 ‘아빠 이제 선생님이야?’하며 좋아하더라(웃음).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지만, 지나간 걸 어쩌겠나. 또 기회가 되면 경기장에 초대할 수 있을 거다.
은퇴 후 버킷리스트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들이 뛰어노는 걸 좋아한다. 축구, 농구, 야구 다 좋아하는데 선수 생활 동안 많이 못 해줬다. 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주고, 축구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다였다. 이번 시즌 끝나고 같이 운동하니 아들이 정말 좋아했고 나도 행복했다. 진작 했어야 하는데, 후회되기도 했다. 술 일주일 동안 먹기도 있었다. 근데 한 3일 먹으니 힘들더라(웃음). 이제껏 여행 가면 아내와 맥주 한잔하기 이런 것도 안 해봤다. 헬스장이 있는 호텔에 가서 새벽 운동하고 움직이곤 했다. 이번에 일본 가서 맥주 먹으니까 정말 좋더라.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어릴 때는 이런 지도자가 돼야지, 저런 지도자가 돼야지 많이 생각했었다. 많은 분에게 물어봤는데 선수 하다가 코치를 하면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서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어떤 스타일보다는 백지상태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다 받아들이려고 한다. 선수 생활도 성실하게 잘 마무리했으니 코치도 차근차근 조금씩 배워나가면 좋은 지도자가 되지 않을까.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배우고 싶다.
송영진 감독과 같은 팀 동생-형, 선수-코치를 지나 코치-감독 관계가 됐는데?
처음 KT에 왔을 때 형이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과묵하고, 포스가 있어서 무서웠다(웃음). 코치님으로 계실 때는 당연히 코치님이었으니 무서웠고, 지금은 내가 막내 코치다보니 눈치가 보인다(웃음). 말씀은 많이 없으신데 많이 배려해주시고 노력하신다. 남자다운 스타일이라 나만 잘하면 된다.
마흔에 마주한 새로운 시작. 과거에 마흔을 상상해본 적 있었나?
아저씨(웃음). 평생 30대일 줄 알았다. 어릴 적 마흔을 상상했을 때, 은퇴는 했을 텐데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체육 교사, 아마추어 지도자, 프로 지도자 중 가장 좋은 게 프로 지도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딱 됐다. 신기하다. 가장 높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룬 거니 만족한다. 앞으로 40대를 더 열심히 살아서 좋은 기회에 맞게 노력하고 싶다.
변화 많은 KT, 어떤 부분을 기대하면 좋을까?
내가 은퇴하고 선수 연령층이 훅 낮아졌다(웃음). 워낙 젊은 팀으로 변화하다 보니 빠른 농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선수부터 잘 구성을 맞추면 재밌는 농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훈이도 제대해서 돌아오면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테니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