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최서진 기자] 도카시키 라무(32, 192cm)는 일본 최고의 여자농구 센터다. 지금 한국의 박지수처럼 말이다. 박지수가 한국 최고의 센터 자리에 오르기 전, 도카시키는 이미 일본 최고의 센터였다. 2010-2011시즌 WJBL 에네오스 선플라워즈 소속으로 데뷔해 전승으로 우승을 이끌었고, WJBL 최초로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수상했다. 뛰어난 탄력에서 나오는 호쾌한 덩크슛은 덤이며 2015년에는 WNBA로 건너가 시애틀 스톰에서 3년 동안 뛰었다. 일본 여자농구 역사에서 도카시키는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징적인 선수다. (인터뷰는 8월 28일에 진행됐습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코로나19로 오랜만에 한국에 왔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전까지는 10년 동안 계속 왔다갔다했죠. 한 14년 전부터 오기 시작했으니 아마 10번 이상은 왔던 것 같아요. 한국 음식을 다 좋아하는 편이에요. 오늘 저녁은 소고기죠(웃음). 매운 것도 잘 먹는 편이고 삼겹살, 불고기도 좋아해요.
고기류를 좋아하시는군요?
고기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대회 기간에 오면 음식에 제한이 있어요. 여행으로 왔을 때는 특이한 음식도 먹어봤죠. 움직이는 산낙지 있잖아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막 동영상 찍으면서 구경도 하고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참가하고 있는 박신자컵은 어떤가요?
오랜만에 한국에서 경기를 뛰었어요. 수준이 많이 올라온 것처럼 보였어요.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신체적으로 강하게 부딪히죠. 그래서 경기를 치르면 좋은 공부가 돼요. 경기 끝나고 한국 팬분들이 ‘수고하셨습니다. 멋있다’ 이런 좋은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나라는 다르지만,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일본 농구 특성과 한국 농구 특성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국은 몸싸움이 강한 것도 있는데, 터프샷이 눈에 띄어요. 수비도 열심히 하고 슛 체크를 하는데도 슛을 정말 잘 쏘더라고요. 슛 성공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일본은 교체 출전하는 선수들이 코트에 인사하고 들어오더라고요. 이유가 있나요?
음…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아요(웃음). 옛날부터 이어지는 관습 같은 거예요. 반대로 한국 선수들은 자유투를 던질 때 심판한테 인사하잖아요. 그런 거 보면 저희는 또 신기해요. 문화가 다르니까요.
맞붙은 상대 중 박지수 외 기억 남는 선수도 있나요?
우리은행 박지현 선수요. 지난 4월쯤 WJBL 올스타(WKBL X WJBL 올스타 한일 교류전)에서도 만났거든요. 젊은데 재밌고,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어요. 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수는 우리은행 김단비 선수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계속 선수생활을 하고 개인 성적이나 팀 성적을 꾸준하게 내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들죠.
박지수의 영원한 라이벌
도카시키와 박지수의 첫 맞대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중국에서 열린 FIBA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박지수는 성인대표팀 첫 출전이었고, 도카시키는 이미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였다. 박지수는 도카시키를 막으라는 특명을 받고 교체 출전했으나 곧바로 블록슛을 맞았다. 3분 동안 수비 리바운드 1개, 파울 1개를 기록했다. 반면, 도카시키는 27분 동안 12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결과는 53-59로 한국의 패.
2023년 8월 둘은 8년 만에 같은 코트 위에 섰다. 박신자컵에서 첫 맞대결은 과거와 상반된 결과였다. 도카시키는 17분 동안 6점 4리바운드에 그쳤고, 박지수는 20점 6리바운드를 뽐내며 94-68 대승을 이끌었다. 박지수는 경기 후 “뭐라 해야 할까요. 좋았어요. 농구 인생에 있어 도움 될 것 같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성인 되고 처음 맞붙는 거였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적이 있어요. 도카시키에게 블록슛을 당했고, 바로 벤치로 나갔죠(웃음). 당시 도카시키의 나이가 지금 제 나이 정도였을 거예요. 서로의 전성기에 나이도 비슷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아직도 일본 최고의 선수죠”라고 말했다. 박지수에게 도카시키는 국적을 떠나 배울 점 많은 농구 선배이자 영원한 라이벌인 셈이다.
박지수 선수가 성인 돼서 당신과 처음 맞붙는 거라 기대가 컸다고 해요.
이전까지 영상으로만 보고 있었어요. 이제야 같은 코트에서 매치업을 하게 돼서 오기 전부터 기대됐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팀 상황과 제 컨디션이 좋지 못해 긴 시간 맞붙지 못했어요. 아쉽기는 했죠. 그래도 다음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결승이요.
당신에게 힘들었던 날이 있었나요?
있었죠. 계속 성적을 내야 하는 국가대표로 뛰었었고, 에네오스도 계속 이기는 팀이니까 정신적으로 힘든 날이 있었어요. 그래서 박지수 선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요. 저 또한 젊을 때 WNBA에 갔고, WNBA 시즌이 끝나면 다시 일본으로 와서 농구만 계속하다 보니 지치기도 했죠. 다만, 좀 더 오래 농구를 했기에 어려움이 와도 잘 이겨낼 방법이 생긴 것 같아요.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주위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한 경기에도 저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날마다 베스트는 다를 수 있죠. 제가 기대를 많이 받는 것도 이 정도 능력이 있으니까 따라오는 거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박지수 선수는 제가 농구로 조언할 게 없는 선수예요. 대단한 선수니 자신감 있게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네요.
아쉽게도 둘의 결승전 리매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3-4위전에서 KB스타즈와 에네오스가 맞붙었다. 에네오스는 KB스타즈를 79-74로 꺾으며 3위에 올랐다. 도카시키는 14분 동안 10점 6리바운드, 박지수는 8분 동안 8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도카시키는 3점슛을 잘 쏘지 않는 박지수가 자신 앞에서 외곽슛을 성공시킨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앞으로 도카시키와 박지수가 맞붙을 경기는 많다. 둘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아시아인으로서 WNBA에서 보낸 시간은 어땠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힘들었습니다. 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시아인이기에 몇몇 사람들이 밑으로 보는 느낌이 있기도 했죠. 환경이 다르니까 맞추기 위해 체력을 많이 썼어요. 신체조건도 그렇고 힘도 더 뛰어나니 일본에서는 겪기 어려운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영어도 어려웠어요. 소통이 잘 안 되다 보니 신뢰 관계를 쌓기 위해 코트에서 제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도 컸죠.
고생이 많았겠네요.
아무래도 WNBA는 패스를 받았을 때 피하거나 득점으로 연결짓지 못하면 이후에 패스가 잘 안 와요. 다들 스스로 하겠다는 개인적인 플레이가 강하죠. 그래서 정신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고, 패스를 받으면 무조건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컸죠. 대단한 선수들 사이에서 뛰었으니 제게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WNBA 진출, 일본 국가대표, WJBL 우승, MVP 등 이미 이룬 것이 많은데 목표가 더 있나요?
음…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저는 아직도 제가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에서 뛸 기회가 또 있다면 갈 거고, 이번 국가대표팀에 호명되지 않았지만 다시 국가대표로 복귀해서 해외팀이랑 맞붙고 싶은 마음도 커요.
농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뭔가요?
딱히 하나를 꼽기 어렵네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팬도, 가족도, 관계자분들도 있는데다가 박지수 선수 같은 라이벌도 있죠(웃음).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고, 라이벌에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저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농구 코트라고 생각해요. 오래 함께하고 싶죠.
은퇴를 생각하기도 하나요?
최소 5년은 더 하고 싶은 걸요(웃음). 5년이 지나면 37살 정도 되겠네요. 무릎 부상, 발목 부상이 없다면 최대한 뛰고 싶어요.
토요타의 오가 유코 감독처럼 지도자 생각도 있나요?
오오. 방금 저 지도자라는 말을 알아들었어요. 지도자가 일본어로는 ‘시도샤’로 발음되는데, 알아들은 것 보면 한국에서 지도자를 할 수도 있겠는데요(웃음)? 당장 지도자를 할 생각은 없지만 자격증은 준비하고 있어요. 자격증 연수를 받으면 지금의 코치님, 감독님들의 말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2~3년 뒤에는 점점 은퇴가 다가올 테니 그쯤부터 잘 준비하고 싶어요. 한국의 지도자 대부분은 선수 출신이잖아요. 우리은행의 전주원 코치님도 제가 어렸을 때 전설이라고 생각했던 분이에요. 신기하죠. 이번에 만나서 반가웠어요.
마지막으로 한국 농구에 조언해줄 말이 있을까요?
일본이랑 할 때는 슛을 좀 못 넣었으면 좋겠네요(웃음). 조언하기 어려운데, 한국도 일본처럼 높이가 낮은 만큼 스피드가 중요할 것 같아요. 우리도 그 부분을 인식하면서 하고 있거든요. 한국도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라 문제없을 것 같네요.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서 아시아 농구가 더 활발해지고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높이가 낮은데도 스피드가 대단하죠. 하지만 항상 높이가 있는 선수가 필요해요! 저랑 박지수 같은 선수 말이죠(웃음).
PS. 이 인터뷰를 박지수 선수가 꼭 봤으면 좋겠네요. 말 좀 전해주세요. 꼭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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