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최창환 기자] ‘슛도사’, ‘람보슈터’ 등 농구대잔치 세대부터 ‘에어 카리스마’, ‘조선의 슈터’에 이르기까지.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의 곁에는 늘 별명이 함께했다. 한국 농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KBL 현역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별명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가이드북이나 나무위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명과 관련된 비화를 공개한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0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전 프로야구선수 박용택과 김태균은 각각 데뷔한 팀에서 은퇴, 영구결번까지 된 레전드로 꼽힌다. 행동 하나하나에 팬들이 별명을 붙여주는 것도 밈이 됐던 선수들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별명택’, ‘김별명’이란 별명도 있었을까. “김태균은 별명이고 김별명이 본명이다”라는 그럴싸한(?) 설이 떠돌기도 했다.
KBL을 대표하는 ‘별명부자’는 김종규(DB)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니셜을 딴 ‘JK’라 불리고, 지난 시즌에는 ‘김장미’라는 새로운 별명도 생겼다. 김종규는 덩크슛을 터뜨린 후 손바닥에 있는 꽃잎을 부는 듯한 세리머니를 선보였는데, 마침 원주 DB의 연고지 원주의 시화는 장미였다.
DB는 지난 시즌 선보인 시티 에디션에 큼지막한 장미를 새겼고, 이를 토대로 ‘김장미’라는 별명도 탄생했다. 창원 LG에서 뛸 당시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 “창원 팬들이 배우 이민호를 닮았다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해서 생긴 ‘이민호’도 리스트에 추가된 별명 가운데 하나다.
달갑지 않은 별명도 있었다. 2013-2014시즌, 전주 KCC(현 부산 KCC)에서 뛰었던 아터 마족은 단 7경기 만에 퇴출될 정도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외국선수였다. 당시 김종규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었다. 드래프트 1순위로 선발될 정도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김종규가 부진할 때면 안티 팬들은 마족의 이름을 더해 ‘마족규’라는 별명을 릴레이처럼 댓글로 달았다.
선수 입장에서 유쾌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별명이지만, 김종규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최근 점프볼 유튜브에 출연, 자신의 별명을 적는 공간에 “‘마족규’ 원하시는 거 아니에요?”라며 셀프 디스를 하기도 했다. 안티 팬들이 만든 별명조차 유쾌하게 받아들인 그가 ‘진짜 프로’ 아닐까.
또한 김종규는 2019년 레바논과의 FIBA(국제농구연맹) 남자농구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서 ‘마족규’의 어원이 된 마족을 상대로 호쾌한 인유어페이스를 터뜨리기도 했다. 국가대표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선보인 덩크슛 가운데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명장면이었다.
‘주키드’부터 ‘함던컨’, ‘코리안 어빙’까지
예나 지금이나 NBA, KBL 선수의 이름을 접목한 별명은 팬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다만, 디안드레 조던이나 블레이크 그리핀, 디켐베 무톰보 등 NBA 스타들의 이름을 조롱의 의미로 섞어 만든 별명은 예외로 하자.
NBA+KBL 스타 별명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주희정 고려대 감독은 현역 시절 트리플더블 제조기였다. 통산 8차례 트리플더블을 작성했고, 이는 국내선수 1위이자 전체 공동 2위에 해당한다.
NBA에서는 제이슨 키드 댈러스 매버릭스 감독이 다재다능한 가드였다. 트리플더블을 통산 107회 작성, 5위에 올랐다. 이와 같은 플레이 스타일을 빗대 주희정의 현역 시절 별명은 ‘주키드’였다.
약점을 극복한 것도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였다. 주희정은 데뷔 초기 3점슛이 약점으로 꼽혔으나 부단한 노력을 통해 강점으로 만들었고, 통산 3점슛 2위(1152개)에 이름을 올렸다. 키드 역시 데뷔 초기 슛이 약점으로 꼽혔다. 점프슛의 ‘J’를 뺀 에이슨 키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붙기도 했지만, 혹평을 딛고 통산 1988개의 3점슛(17위, 성공률 34.9%)을 남겼다.
KCC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강병현, 하승진은 신생 팀 올랜도 매직을 단번에 인기 팀으로 이끈 페니 하더웨이와 샤킬 오닐에 빗댄 ‘강페니+하킬’이라 불렸다. 이에 대해 강병현 LG 코치는 “사실 말도 안 되는 별명이다. 오그라든다(웃음). 그래도 그만큼 팬들이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감사한다”라고 돌아봤다.
현역 가운데 NBA 선수의 이름과 접목된 대표적 별명은 ‘함던컨’이다. 탄탄한 기본기, 화려하진 않지만 위력적인 포스트플레이를 토대로 샌안토니오 스퍼스 왕조를 이끈 팀 던컨과 함지훈(현대모비스)의 이름이 더해지며 생긴 별명이다.
이밖에 김시래(DB)는 전성기 시절 토니 파커의 이름을 빗댄 ‘시래 파커’가 별명이었고, 제대를 앞둔 변준형(상무)은 우상을 카이리 어빙으로 꼽아 ‘코리안 어빙’ 또는 ‘변어빙’이라 불렸다. 비공식 별명은 ‘새돼새’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플래시썬’ 탄생 비화
김선형(SK)을 대표하는 별명인 ‘플래시썬’은 점프볼 2013년 1월호 커버스토리 인터뷰를 담당했던 필자가 만든 별명이다. 당시 데뷔 2년 차였던 김선형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그를 대표하는 별명이 없었다. “몇몇 팬들이 ‘데릭 선형’이라 불러주시는데 기왕이면 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게 김선형의 말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서 착안해 ‘플래시’라는 별명을 쓰고 싶었지만, 이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NBA 스타 드웨인 웨이드의 별명(The Flash)이었다. 이에 필자는 한때 유행했던 NBA 선수와 KBL 선수의 이름에서 유래된 별명에서 착안, 플래시에 썬을 붙여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사실 최초 원고 마감을 했을 때 제목은 ‘썬플래시’였지만, 교정을 보는데 아무래도 입에 붙지 않았다. 뭔가 주스 이름 같기도 하고…. 그래서 최종 교정을 볼 때 순서를 바꿨고, 김선형을 대표하는 별명인 ‘플래시썬’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2013년 1월호에 상세히 담겨있다.
‘플래시썬’을 커버스토리와 웹 기사에서 다루자 팬들 사이에서는 ‘클러치썬(승부처에 강한 썬)’, ‘썬자님(썬+왕자님)’ 등 후속 별명도 여러 개 만들어졌다. 김선형이 손으로 번개 모양을 표시하는 세리머니의 모태가 되기도 한 별명이다. 필자가 언제까지 기자 생활을 할진 모르겠지만, 김선형을 대표하는 별명을 직접 만들었다는 자부심은 평생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다.
‘불꽃슈터’와 ‘눈꽃슈터’의 만남
지난 시즌은 부상으로 30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전성현(LG)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KBL 최고의 슈터다. KBL 역대 최다인 76경기 연속 3점슛 성공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KBL 출범 후 2시즌 연속 170개 이상의 3점슛을 터뜨린 선수는 전성현과 문경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전성현의 별명은 ‘불꽃슈터’. 역대 최고의 농구 만화로 꼽히는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의 동료이자 슈터 정대만의 극 중 별명이기도 하다. 전성현이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역시 정대만이며, 덕분에 ‘전대만’이라 불린 적도 있었다. 전성현은 고양 소노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LG로 이적했다. LG에서 현역 시절 슈터로 이름을 날렸던 조상현 감독과 함께하며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곁에는 떠오르는 슈터 유기상(LG)도 있다. 유기상은 지난 시즌 드래프트 출신 기준 신인 최다 3점슛(95개)을 터뜨리며 신인상을 수상, 단숨에 LG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유기상은 7월 일본에서 열렸던 대표팀 평가전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차전에서 15분 28초만 뛰고도 3점슛 2개 포함 8점, 예열을 마친 유기상은 2차전에서 3점슛 5개 포함 17점으로 활약했다. 2경기 3점슛 성공률은 53.8%(7/13)에 달했다.
이름 덕분에 독창적인 별명도 생겼다. 유기상의 영문 이름(YOO KI-SANG) 가운데 ‘유키’는 일어로 눈꽃을 뜻한다. 이에 착안, 한국 팬들은 유기상에게 ‘눈꽃슈터’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스스로도 “(전)성현이 형의 ‘불꽃슈터’처럼 색다른 별명인 것 같다”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전성현은 유기상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데뷔 시즌을 마친 유기상은 롤모델과 함께하며 또 한 단계 레벨업을 준비하고 있다. LG 역시 추격의 불씨를 살리는 ‘불꽃슈터’의 한 방, 상대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는 ‘눈꽃슈터’의 한 방이 조화를 이룬다면 머지않아 통산 첫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지 않을까.
한편, LG에 합류한 또 다른 베테랑 슈터 허일영(LG)의 별명은 ‘허텐’, ‘허물선’이다. ‘허텐’은 그의 이름을 숫자(10)로 바꾼 것에서 착안했으며, ‘허물선’은 유달리 높은 슛 포물선이 시그니처가 되어 생긴 별명이다.
한글 패치까지 더해진 ‘라이언킹’, 그리고 ‘두호’
‘라이언킹’은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별명이다. KBO리그에서는 ‘국민타자’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승엽의 별명이었다. 현역 시절 그의 소속 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에서 유래됐다. K-리그의 ‘라이언킹’은 이동국이다. 탁월한 골 결정력, 미소년 이미지를 겸비해 안정환과 함께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던 스타다. 이동국은 데뷔 초기 골을 넣을 때마다 찰랑이는 헤어스타일이 사자의 갈기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라이언킹’이란 별명이 생겼다.
KBL의 ‘라이언킹’ 오세근(SK)은 이동국과 비슷한 사례다. 오세근은 중앙대 신입생 시절부터 장발에 염색을 즐겼고, 압도적인 골밑장악력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라이언킹’이라 불렸다. 오세근의 기억에 따르면, 2010년 당시 농구전문지 ‘바스켓코리아’의 취재기자가 처음으로 ‘라이언킹’이라는 표현을 썼다. 스스로도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던 별명이었고, 이후 한글 패치가 더해져 ‘오사자’란 별명도 추가됐다.
KBL 데뷔 시즌에도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던 오세근은 이후 점차 사자머리를 시도하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큰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한동안 조용히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적인 것보단 농구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예전 같은 노란색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여유가 될 때 갈색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세근이 2017년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었다.
한동안 얌전했던 오세근의 헤어스타일은 안양 KGC(현 정관장) 소속이었던 2021-2022시즌에 모처럼 화려함을 되찾았다. 오세근은 정규리그 막판 펌과 염색을 곁들인 헤어스타일로 변신, 신인 시절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을 선보였다. 오세근의 골밑장악력은 여전했고, 오세근을 앞세운 KGC는 4강에서 정규리그 준우승 팀 수원 KT를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KGC가 2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오세근이 ‘라이언킹’, ‘오사자’라고 불린다면 이승현(KCC)의 별명은 ‘두목 호랑이’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만화 ‘슬램덩크’의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강백호는 종종 맞대결하는 상대의 외형을 보며 자신만의 별명을 만들었는데, 우락부락한 외모를 지닌 능남고교의 센터이자 주장 변덕규를 보며 떠올린 별명이 ‘두목 원숭이’였다.
이승현의 별명은 여기서 유래됐다. 이승현의 모교 고려대를 상징하는 동물인 호랑이에 이승현의 리더십이 더해져 ‘두목 호랑이(a.k.a 두호)’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적은 대학리그에서는 널리 쓰이지 않았지만, 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선발된 직후 “이제 KBL의 두목이 되겠다”라는 소감을 남긴 게 화제가 돼 ‘두목 호랑이’도 더욱 많은 사랑을 받는 별명이 됐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이정현, 하윤기의 폭풍 성장
김주성, 김동우, 강병현, 이승현, 최승욱 등등. KBL에서는 심심치 않게 동명이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SK는 동시대에 김민수라는 선수 2명이 함께한 적도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훌리’ 김민수는 2008 신인 드래프트 2순위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2020-2021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SK에서만 뛴 원클럽맨이었으며,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적도 있었다. 또 1명의 김민수는 2012 2군 드래프트 출신이다. 건국대 출신의 블루워커였지만, 1군 무대를 밟진 못했다.
KBL에서 동명이인의 역사를 논할 때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이름은 이정현이지 않을까. 서울 삼성 이정현은 2010 신인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선발됐던 스코어러다. 데뷔 초기 식스맨상을 받는 등 ‘벤치 서태웅’이라 불렸지만, 점차 주득점원으로 성장해 여전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입대, 대표팀 차출로 자리를 비웠을 때를 제외하면 636경기 모두 소화해 ‘금강불괴’라 불리기도 한다.
그의 뒤를 잇는 고양 소노 이정현 역시 연세대 출신이다. 연세대 재학 시절 ‘금강불괴’와 함께 대표팀에 선발돼 공중파 뉴스에 소개가 됐고, 이때부터 ‘작은 이정현’을 줄여 ‘작정현’이라 불렸다. 이게 계기가 돼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도 ‘little junghyun’이다.
데뷔 4년 차에 불과하지만, ‘작정현’은 어느새 선배 이상의 존재감을 지닌 선수로 성장했다. 누적 기록은 아직 비할 수 없지만, ‘작정현’은 지난 시즌 평균 22.8점 3.4리바운드 6.6어시스트 2스틸로 활약하며 단숨에 MVP 레벨로 올라섰다. 이쯤 되면 별명도 ‘대정현’으로 정정해야하지 않을까.
하윤기(KT)도 폭풍 성장기를 그리며 별명까지 업그레이드된 사례다. 데뷔 초기 하윤기의 별명은 ‘베이비 헐크’였다. 이는 고려대 재학 시절 대표팀에서 함께했던 라건아가 만들어 준 별명이다. 뛰어난 신체조건에 탄력까지 두루 지닌 하윤기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별명이었고, KT 역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별명을 활용했다.
KT는 홈경기에서 상대가 자유투를 던질 때 골대 뒤에 에어바이블, 이른바 ‘주유소 풍선’을 펼쳐 방해 공작을 펼친다. 풍선의 주인공이 바로 하윤기다. 초록빛으로 물들어진 하윤기의 풍선은 이제 수원 KT 소닉붐 아레나를 상징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됐다.
또한 하윤기는 2021-2022시즌 올스타게임 덩크 콘테스트에 헐크 복장으로 참가, 정점을 찍었다. 하윤기 역시 이정현의 드래프트 동기로 어느덧 4년 차 시즌을 앞두고 있다. 하윤기는 지난 시즌에 커리어하이(16.3점 6.7리바운드)를 세운 것은 물론, 국내선수 공헌도 랭킹에서도 6위에 올랐다.
하윤기가 점차 ‘애송이’ 딱지를 떼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를 ‘베이비 헐크’가 아닌 ‘헐크’라 표현하는 언론도 늘어가고 있다. 이정현도, 하윤기도 ‘정변의 모범사례’ 아닐까.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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