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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고교 랭킹 넘버원’ 홍대부고 박정웅, KBL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다

서호민 기자 / 기사승인 : 2025-10-06 07: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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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서호민 기자] KBL에 다시 한번 고교 얼리 엔트리 열풍이 불고 있다. 오는 11월 15일 열릴 2024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는 역대 최다인 3명의 고교생이 프로에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올해 ‘고교 랭킹 NO.1’으로 평가받는 홍대부고 주장 박정웅(G/F, 194cm)도 그 중 한 명이다. 프로농구 선수였던 아버지 박성배 씨의 그늘에서 벗어나 최준용(KCC), 이우석(현대모비스)에 버금가는 다재다능한 포워드가 되겠다며 당당하게 프로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박정웅. 그가 대학 진학이 아닌 프로 도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써 내려갈 스토리가 더욱 많은 지금, 박정웅이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본 인터뷰는 9월 12일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피는 못 속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Q:U18 아시아컵에서 목표로 했던 성적을 이뤄내지 못했어요. 주축으로서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목표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아쉬워요. 요르단과 8강 경기는 홈 팬들의 응원도 거세기도 했고 또 그런 경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경험도 부족했어요. 그래도 배운 점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외국 선수들과 피지컬 차이를 느끼며 더 보강해야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Q:주장 양종윤과 룸메이트였어요. 어떤 얘기를 주고 받았나요?
8강에서 요르단에게 지고 나서 (양)종윤이가 숙소에서 많이 속상해했어요. 옆에서 ‘네 탓 절대 아니다. 우리가 미숙했다. 좀 더 잘 준비했어야 했다. 너만 책임 있는거 아니니까 다음 경기 잘하자’고 위로해줬죠. 종윤이도 마음을 다 잡고 동료들한테 끝까지 최선 다해서 남은 경기는 모두 이기자고 얘기했고요. 그런 덕분에 나머지 경기는 다 이기고 5위로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Q:화제를 바꿔 어릴 적 이야기를 해볼게요. 6살 때 클럽에서 농구를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삼성에서 활약하던 박성배 전 선수예요. 농구공을 잡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까요?
맞아요. 아버지께서 의정부에서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계세요. 어렸을 때는 재밌게 했어요. 클럽 대회도 많이 나갔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의정부SK를 시작으로 오리온, 목동리틀삼성썬더스 등 여러군데서 농구를 배우다가 초등학교 말미에 의정부 리틀삼성썬더스로 옮겼어요.

Q:아버지 박성배는 어떤 선수로 기억하나요?
아버지가 선수로 활약하셨을 때는 아쉽게도 제가 태어나지 않아서 실제로 플레이 모습은 못 봤어요. 사람들이 아버지가 빨랐다고 하는데 솔직히 안 믿겼어요. 그런데 영상으로 찾아보니 실제로 빠르신거예요(웃음).

Q:어릴 적 리틀썬더스배에서 우승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이 때 혹시 기억 나나요?
지금 와서 보니까 많이 어리고 색다르네요. 형들이랑 주로 많이 했는데 제가 득점도 잘하고 또 키가 커서 뒷선까지 수비가 가능하니까 형들이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해주면서 계속 칭찬해줬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 엘리트 선수까지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클럽농구 정복한 박정웅, 본격적인 꿈 펼치다

Q:그러다가 단대부중에서 본격적으로 엘리트 농구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의정부 리틀삼성썬더스에서 활동하던 6학년 때, 인제 유소년 대회에서 단대부중 차동일 코치님께서 선수 해볼 생각 없냐며 스카웃 제의를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농구선수가 꿈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상의 끝에 큰 어려움 없이 단대부중 농구부에 들어갔어요. 1학년 때부터 코치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신 덕분에 많이 뛸 수 있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주 공격 옵션은 아니었고 궂은일, 수비하는 역할이었는데 그때 수비 역할을 많이 했던 게 저한테는 큰 경험이 됐어요. 고등학교 진학하고 나서도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홍대부고로 진학한 뒤 올해 4월, 협회장기 대회에서 첫 전국 대회 우승을 맛봤어요. 극적인 역전 버저비터 우승이라 더 기억에 남을 거 것 같아요. 또, 대회 MVP에 선정되기도 했고요.
농구를 시작한 이후로 첫 전국 대회 우승이었어요. 지금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고 싶어요. 그 정도로 너무 기뻤고 그런 기분은 살면서 처음 느껴봐요. 당시 버저비터 슛을 넣은 (정)현진이를 따라가서 때리면서 기뻐했는데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에 남아요.


Q:공격, 수비, 패스 능력을 두루 갖췄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 다재다능함이 돋보이는 선수였나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선수라면 특출난 무기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께서는 농구는 하나만 하면 안 된다. 공격, 수비, 패스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사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 말을 안 믿었어요. 저 나름대로도 특출난 무기가 없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지나고 나서보니 이것저것 두루 잘하는 것도 저만의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은 다재다능함을 저만의 무기로 삼고 강점을 더 극대화하려고 해요.

Q:슈팅 핸드는 오른손인데 유독 왼쪽 돌파를 즐기는 편이에요. 덩크도 왼손으로 더 많이 하기도 하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는 왼손을 많이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오른손으로 밥 먹는 습관을 기르라고 하셔서 언젠가부터 오른손을 많이 쓰게 됐죠.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농구할 때는 양손을 잘 써야 한다고 강조하셔서 왼손, 오른손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아요. 또, 중학교 3학년 때 7살에 금이 갔던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이 찾아왔어요. 병원에서는 앞으로 농구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얘기하시기도 했는데, 오른손이 안 되면 왼손으로라도 농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왼손을 더 많이 연습했어요.


대학 진학 대신 프로 도전을 택한 이유는?

Q:올해 평가가 좋았던 만큼 충분히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 진학이 아닌 프로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대학교를 먼저 생각했어요. 대학 생활, 그리고 정기전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아버지께서도 대학보다는 프로에 도전하길 원하셨거든요. 협회장기와 연맹회장기 대회가 끝난 뒤부터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U18 대표팀에서 훈련하고 경기하면서 마음을 굳혔어요. (이)근준이가 가장 먼저 얼리 엔트리를 선언했는데 그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생각해보니까 결국 최종 목표는 프로인데 더 일찍 도전하고 적응하고 배우는게 맞다고 느꼈어요. 또, 프로에 가서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했고요.

Q:인생을 건 결정이에요. 그만큼 많은 준비와 노력도 필요할 것 같아요.
서명진(현대모비스) 선배님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외로울 수 있다. 외적인 것들을 모두 각오해야 한다’는 멘트가 기억에 남아요. 결국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외적인 부분들을 다 감수하고 남들보다 두배, 세배 더 노력해야 해요. 개인 운동을 열심히 하되, 프로에 가게 된다면 선배님들께 운동적인 부분을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Q:홍대부고 이무진 코치는 어떤 조언을 해줬나요?
코치님께서도 프로와 고등학교는 다르다는 걸 얘기하면서 왜소한 제 몸으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편이에요.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야 하고 싶은 농구를 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실제로 프로 선배들과 몸으로 직접 부딪혀보니 대학 선배들과는 또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Q:다재다능함이 강점이에요. 현재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 중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요?
최준용 선배님과 이우석 선배님을 꼽고 싶어요. 최준용 선배님과는 U18 대표팀 때 연습경기에서 맞붙어 봤는데 코트에 있고 없고 차이가 크게 느껴졌어요. 2미터 신장에 돌파, 슈팅, 볼 핸들링까지 모든 능력을 다 갖추셨잖아요. 특히 힘이 엄청나세요. 연습경기에서 박스아웃할 때 부딪혀봤는데 그렇게 힘이 쎌 줄은 몰랐어요(웃음).

Q:드래프트까지 두달 정도 남았어요. 각오도 들려주세요.

남은 두달 동안 파워, 웨이트를 보강해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컴바인과 트라이아웃 때도 최대한 프로 관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1순위에 뽑히는게 목표입니다.

 

(*참고로 역대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홍대부고 출신 1순위는 아직까지 단 1명도 없었다. 박정웅이 그 주인공이 될수 있을지도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Q:프로에 가게 된다면 아버지가 현역 시절 활약했던 삼성에서 뛰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이창수·이원석 부자처럼요.
솔직히 상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제가 삼성에 가게 된다면 아버지가 뛰었던 팀이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긴 해요.

Q:주장으로서 1년 간 홍대부고 동기, 후배들을 이끌었어요. 동고동락한 동료들에게도 한마디 한다면요.
저학년 때 선배 형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반대로 저 또한 후배들에게 그렇게 더 알려주고 잘해줬어야 하는데 사실 U18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주장으로서 역할을 많이 못 했어요. 그런 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 따라와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고등학교 남은 1, 2년 잘 보내서 후배들도 좋은 선수가 됐으면 해요.

 

#BONUS ONE SHOT_금쪽 같은 아들, 웅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아버지 박성배, 어머니 신동선 씨의 러브스토리

앞서 언급했듯이 박정웅의 아버지는 전 프로농구 선수 박성배다. 박정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아버지 박성배, 어머니 신동선 씨는 프로농구 사상 첫번째 선수-치어리더 커플이다. 코리아텐더 시절 만나 연애 1년여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2006년 4월 17일 막내 아들 박정웅이 탄생했다. 박정웅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러브스토리를 언급하자 웃으며 “우연이지 않나 싶어요(웃음). 저로선 정말 감사하죠. 엄마께서 키(177cm)가 크셔서 덕분에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어요. 다만, 아빠만큼 빠르지 못한 건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이어 아빠와 엄마 둘중 누굴 더 닮았냐는 질문에는 “어렸을 때는 엄마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클수록 아빠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라며 “사실 엄마 닮은 게 더 좋긴 한데…”라고 웃었다.

 

이무진 코치 COMMENT

“단대부중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재능은 좋았어요. 슛, 패스, 운동능력 등 장점을 고루 지녔어요. 다만 체력이 걱정돼요. 프로 레벨 수준에서 잘 녹아들기 위해서는 체력적으로 준비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아마 본인도 잘 알고 있을거에요. 성실한 선수인만큼 잘 이겨낼거라고 봐요.”


박정웅 프로필

2006년 4월 17일생/194cm/가드-포워드/창도초-단대부중-홍대부고


#사진_문복주 기자,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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