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포스트’는 3명의 빅맨 혹은 장신선수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매우 보기 힘든 전략 시스템 중 하나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전급 빅맨 셋을 동시에 보유하기도 힘들거니와 조합의 난이도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더블 포스트’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트리플 포스트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결정적으로 스페이싱을 중시하는 현대 시스템하고 너무 안 맞는다. 셋 모두 기본적으로 평균 이상의 스피드, 슈팅력, 활동량에 BQ까지 좋아야 시도해볼 수 있는 조합이다. 거기에 서로의 동선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상호보완적인 플레이 또한 요구된다. 어찌어찌 구색만 맞춰서는 득보다 실이 크다.
KBL에서도 트리플 포스트는 사례가 드물다. 과거 SK는 팀 창단과 함께 서장훈, 현주엽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면서 외국인 빅맨과 함께 트리플 포스트를 시도한 바 있다. 해당 선수들의 이름값만 놓고 봤을 때 제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왕조도 가능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너지효과는 커녕 단점만 무수히 노출했고 한축인 현주엽을 슈터 조상현과 맞트레이드하면서 실패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허재 감독 시절의 KCC 역시 마찬가지다. 신인드래프트에서 하승진을 지명했을 당시 허감독은 쾌재를 불렀다. 이미 서장훈이라는 토종 주전 센터가 있었지만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이상 선택은 무조건 하승진일 수밖에 없었다. 포지션 중복은 나중 문제였다. 허감독은 서장훈, 하승진에 외국인 빅맨을 더해 극강의 높이팀을 만들고자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를 절감했다.
결국 서장훈을 슈팅가드 강병현과 맞바꾸면서 트리플 포스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SK, KCC 모두 트리플 포스트를 포기하고 포지션별 밸런스 보강을 택한 바로 그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농구의 기본은 높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합이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소기의 성과를 거둔 팀으로는 SBS(현 정관장)의 데니스 에드워즈(52‧192cm), 표필상(56‧200cm), 리온 데릭스(49‧204cm) 조합이 있다. 지금 같으면 어떻게 돌아갔나 싶다. 일단 셋 중 외곽슛에 능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빠른가? 그나마 에드워즈 정도가 날렵한 편이고 데릭스는 느리지 않은 수준, 표필상은 느렸다.
데릭스 정도를 제외하면 팀 플레이 이해도나 범용성도 좋지못했다. 도저히 트리플 포스트가 이뤄지지 않을 조합이다. 일단 데릭스가 중심을 잡아줬다. 원조 컨트롤타워라는 평가가 말해주듯 데릭스는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한 패싱게임에 능했다. 폭발적인 득점머신도 아니거니와 득점 욕심보다는 동료들의 찬스를 봐주는 플레이를 더 즐겼다.
그런 데릭스가 원활하게 패스를 돌려줬고 대신 득점 욕심이 많은 에드워즈가 대부분 공격을 책임졌다. 표필상같은 경우 동포지션 국내 선수끼리 비교해도 딱히 앞서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큰 체격을 앞세운 힘이 좋았다. 호리호리한 몸으로 인해 몸싸움이 약했던 데릭스 대신 박스아웃, 스크린, 상대 빅맨에 대한 '몸빵수비(?)' 등을 맡아줬다. 이렇듯 셋은 될 듯 안될 듯 묘하게 교통정리가 된 케이스다. 물론 프로 초창기라는 점도 감안해야한다.
이후 트리플 포스트라고 말할 만한 조합은 찾기 힘들었지만 그나마 김주성(45‧205cm)이 뛰던 시절의 DB가 가장 많이 시도했다. 역시 김주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김주성은 역대 어떤 토종 빅맨보다도 범용성이 좋았다. 잘뛰고 잘달리는 빠른 빅맨이면서도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도가 좋았고 슈팅력도 준수했다.
그로인해 어떤 유형의 외국인선수와도 조화를 잘 이뤘고 이러한 부분은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DB는 김주성과 외국인빅맨으로 더블 포스트를 이루고 거기에 더해 골밑에 힘을 보태줄 수 있는 3.5번형 선수가 있을 때 특히 높이가 돋보였다. 가장 효과적으로 높이를 활용한 대표적 팀이다.
아비 스토리(47‧192.4cm)나 윤호영(39‧195.6cm) 등이 화룡점정을 찍어줬다. 이들은 주로 3번 포지션에 섰지만 동포지션에서 파워가 좋은 편이었다. 슈팅과 돌파가 모두 되는지라 내외곽을 오가며 고득점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팀에서는 이들을 집중견제하기 어려웠다. 김주성과 외국인빅맨의 존재때문이었다.
스토리, 윤호영 등은 이러한 부분을 이용해 매치업 상대를 압살하면서 상대 수비에 균열을 냈고 트윈타워와 함께 기막힌 시너지 효과를 냈다. 원주산 트리플 포스트의 위엄이었다. 이러한 부분은 DB의 전통이 되었고 어느새 ‘원주 산성’이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현 시점에서도 DB의 가장 큰 무기는 높이다.
김종규(33‧206.3cm), 강상재(30‧200cm)라는 주전급 토종 빅맨을 둘이나 보유하고있기 때문이다. 당연스레 트리플 포스트 완성에 적지않은 힘을 쏟고 있다. 강상재라는 자원을 백업이 아닌 선발로 쓰기위한 이유도 크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상범 감독 시절부터 끊임없이 여기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지만 실패한 시즌이 더 많았다.
김종규는 분명 좋은 선수지만 한창때 김주성만큼 다재다능하고 BQ가 좋은 선수는 아니다. 김종규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냥 김주성이 워낙 대단했다고 보는게 맞겠다. 강상재는 애매하다. 골밑에서 적극적으로 싸워주는 유형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3번으로 가기에는 스윙맨으로서의 움직임 등이 부족하다.
조합이 쉽지않다. KCC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최준용, 송교창 등 전성기 김주성만큼이나 범용성이 좋은 선수가 둘이나 있다. 지난 시즌 DB가 트리플 포스트에 성공한 배경에는 전천후 외국인빅맨 디드릭 로슨(27‧201cm)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내외곽 공격력에 더해 패싱 능력까지 겸비한 컨트롤타워로서 트리플 포스트 시스템의 난제를 싹 다 해결해줬다.
결과는 정규시즌 우승이었다. 아쉽게도 올 시즌에는 그가 없다. 지난 시즌 잘만 돌아가던 트리플 포스트가 다시 삐걱거리고 있다. 치나누 오누아쿠(28‧206cm)가 그 자리를 메워주기를 기대했지만 아직까지는 쉽지않은 분위기다. 컵대회 당시까지만해도 DB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현재 현재 1승 4패로 9위에 머물고 있다. 아직 시즌초이기는 하지만 높이의 힘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주춤한 DB가 트리플 포스트의 난제를 풀고 다시금 반등의 여력을 마련할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