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정지욱 기자] “외국 선수들이 우리나라 오는걸 좋아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프로농구 감독들에게서 자주 듣던 말이다.
지금은 철 지난 이야기다. KBL 경력자가 아닌 이상 한국은 이제 선수들이 커리어를 이어가고자 하는 무대가 되지 못한다.
연봉 제한에 세금도 구단에서 내주지 않는다. 개런티도 없다. 게다가 퇴출이 잦고 감독들의 요구사항이 많은 리그라는 소문이 선수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올여름 각 구단은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영입 우선 순번에 뒀던 선수를 계획대로 영입한 팀이 많지 않다. 10개 팀 모두 2022-2023시즌을 함께할 선수 영입을 마무리했는데 ‘플랜B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주 KCC는 당초 러시아리그를 경험한 빅맨 영입을 원했지만,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플랜B였던 타일러 데이비스로 방향을 선회 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종료 직후 미국 출장에서 해당 선수를 직접 만났던 전창진 감독은 “처음에 보자마자 마음에 드는 선수였는데, 오지 않겠다더라”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스틴 녹스, 게이지 프림과 계약한 울산 현대모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라스베이거스 출장 길에서 일찌감치 프림과 계약을 체결한 현대모비스는 1옵션 영입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내, 외곽 공격이 가능한 대학졸업생 선수를 1옵션으로 낙점하고 순조롭게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영입까지 이뤄지지는 않았다.
조동현 감독은 “(해당 선수가)하루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계약이 될 줄 알았다. 다음날 계약하지 않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시 1옵션을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플랜B에 있던 녹스와 계약했다. 조동현 감독은 “녹스가 2020-2021시즌 우리 팀에 있던 숀 롱을 상대로도 포스트에서 곧잘 했다. 가장 안정적인 카드였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의 제안을 거절한 선수는 일본으로 향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KBL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원주 DB도 현대모비스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지난시즌에 뛴 레너드 프리맨과 2옵션 계약을 한 뒤 1옵션을 맡을 선수를 라스베이거스에서 물색했다. 몇몇 선수를 우선 순번에 놓고 계약을 추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한국은 고려하지 않는다’였다. 이상범 감독이 출국일을 늦추면서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머물다 영입한 선수가 드완 에르난데스다.
에이전트 뿐 아니라 몇몇 구단 관계자들은 “현재 KBL은 위치가 너무 어정쩡하다”라고 목소리를 냈다. A구단 관계자는 “KBL의 연봉이 낮은 건 절대 아니다. 일본, 대만이 더 매력적인 시장이 됐다. 세금을 구단에서 내주고 개런티까지 해주는 일본을 선택한다. 게다가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뛰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한국, 일본, 대만이 선수 영입 경쟁권인데, 지금은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몇년전 2옵션으로 고려했던 선수에게 1옵션에 가까운 금액을 줘야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B구단 관계자는 “지난시즌 유로리그에서 주전으로 뛴 선수가 B.리그 팀과 계약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G리그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투웨이 계약 조건이 좋아졌기 때문에 젊은 선수들이 KBL에 오기보다는 G리그를 통해 NBA에 도전하고자 한다. 연봉 제한을 더 낮추던지, 아니면 제한을 없애서 선수 영입 풀을 아예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고 견해를 내비쳤다.
한 에이전트는 "해외시장에서 KBL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데 감독들은 제러드 설린저 급을 원한다. 원하는 선수를 영입할 수 없는게 당연한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진설명(사진/홍기웅 기자)=2020-2021시즌 DB에서 뛴 얀테 메이튼(좌)과 저스틴 녹스(우). 1옵션이었던 메이튼은 일본으로 가고 2옵션 녹스는 현대모비스의 1옵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