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정지욱 편집장] “거긴 답이 없어.” 무기력한 행보를 걸어왔던 대한민국농구협회를 향한 농구 팬들의 시선이다. 미디어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농구협회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 사이 한국 농구는 곪아버렸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농구 대표팀의 참패로 이어졌다. 게다가 실패한 방법으로 다시 새 감독을 뽑았다.
정말 답이 없어 보였던 농구협회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정재용 상근부회장의 선임이다. KBS기자 시절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 등 여러 기획을 통해 체육계 혁신을 가져온 그가 한국 농구 개혁을 위해 나섰다. 농구인 100만 양병, 2032년 올림픽을 위한 황금세대 구축 등 장기 플랜을 자신있게 내놓았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부회장 취임과 함께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 같은데요?
하하. 바쁠 수밖에 없죠. 업무 파악을 디테일하게 해야 하니까요. 우선은 그게 급선무입니다. 당장은 사무실 많이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협회가 돌아가는걸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전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왔지만 협회에 맞게 맞물려가야 하니까요. 당장은 서류 들여다보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대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네요. 하하하.
기자와 협회 행정을 하는 자리는 다를텐데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느끼고 계신지요?
그렇죠. 기자생활 할 때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보고 조언하고 기사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기자는 기본적으로 훈수를 두는 역할이고 이곳은 실제로 이행을 하는 곳입니다. 고민하고 얘기하는 내용들을 시행하는 것에 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본질적으로 기자는 3자죠. 지금은 행정직으로서 직접하는 것이 가장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근부회장 자리에 들어오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년간 해온 일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든 행정가든 관계없이 스포츠가 개혁되길 희망하면서 일을 해왔습니다. 이전에는 언론 입장이었다면 이제 행정가 입장으로 하는 것이죠.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한국 스포츠계 전체가 선진화된 방식으로 한국 농구가 세계에 도전했지만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농구가 한국 스포츠에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주도하는 종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권혁운 농구협회장님이 취임하신 후에 미래전략추진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2년간 시스템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제 보고서가 농구협회 이사회와 총회를 통해 채택이 됐고 농구인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번 미래발전 전략은 엘리트 농구뿐 아니라 생활 체육인들도 동의를 하는걸 보면서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요. 이것을 실제로 추진하려면 결과적으로는 협회에 들어와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갑자기 온 것 같지만 권혁운 회장님, 전임 박종윤 부회장님과 얘기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부회장님 건강이 안좋아지시면서 들어온 시기가 빨라진거죠. 위원장 할 때부터 회장님이 전권을 주셔서 사무처 분들과도 일을 해왔었습니다. 기자로서 20년간 추진해온 일을 시행할 준비가 됐다고 확신이 섰고 농구에서 대한민국 스포츠가 가야할 길을 만들고 농구로 인해 스포츠가 변하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합니다.
기자시절 유독 혁신적인 내용의 주제를 다루셨습니다.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축구선수 생활을 하셨고 저도 중학교 때 잠깐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교 운동부를 경험하면서 ‘이걸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했습니다.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기자라는 직업이 ‘언론고시’라고 할만큼 굉장한 경쟁력을 가졌고 그만큼 파급력도 있는 분야였습니다. 스포츠기자가 되면서 이런 부분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일을 시작했고 운이 좋게도 공영방송인 KBS에 입사해서 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가 그 사례 중 하나였군요?
맞습니다. 연세대를 다니면서 볼케이노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며 농구에 푹 빠져지냈고 농구 기자를 하면서 농구계 많은 분들을 알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농구계의 문제점을 바꾸는 데에 일조하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됐고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다루면서 벽을 느꼈어요. 구조와 시스템을 바꿔야 할 일이었어요. 운이 좋게 한국언론재단의 후원을 받아 버클리대학교로 공부하러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대학스포츠를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경기력을 낼 수 있는 환경, 대학입시가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부했습니다.
회사 휴직을 하고 조지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국내에서는 데이터가 충분치 않으니까 내가 그 해법을 가지고 들어가서 KBS를 통해 실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와 ‘박찬호와 마이클 조던’ 다큐멘터리가 제 박사 논문입니다. 전 세계 스포츠는 산업으로 성장했는데 국내는 권위적인 스포츠 구조로 인해 70, 80년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다룬 것이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고 이것을 극복하고 글로벌 시대에 맞게 산업으로 가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박찬호와 마이클 조던’입니다. 두 가지가 사실 연동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스포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으셨군요.
우리는 금메달에 집착하는 시스템이죠. 물론 올림픽과 같은 세계대회에서 금메달 너무 좋죠. 하지만 지금은 저변을 넓히고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참여하고 선수, 일반인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선진화를 해야하는 방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추진하고 있는 디비전시스템입니다.
2006년 귀국해서 첫 번째로 한 것이 대학스포츠협의회와 학교 스포츠 클럽리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교육부와 KBS가 공동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죠. 슬램덩크에 나오는 인터하이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고 보면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형태에서 엘리트 선수들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으니 정부 예산 지원을 통해 주말리그로 전환하고 일반 학생들과의 수업 참여일수 격차를 줄였습니다. 이전에는 아예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었으니까요. 이거 하면서 욕 엄청 먹었고 항의도 엄청 받았습니다. 대학스포츠협의회와 학교스포츠클럽리그 만들 때도 엘리트 스포츠 다 죽인다고 엄청 욕먹었습니다.
2008년에 스포츠와 성폭력 인권보고서 다큐멘터리를 다룰 때에는 농구계에서 거의 매장을 당하다시피 했고요. 나중에 스포츠 전 종목에 걸쳐서 터졌을 때 누군가는 ‘정 기자 덕분에 우리(농구)가 매를 미리 맞았다’고 얘기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런걸 다룬 사람이 농구협회 부회장으로 온다하니 여전히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농구미래전략추진위원장을 역임하시면서 디비전 시리즈에 대한 계획을 얘기하셨습니다. 시스템 정착이 굉장히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인데요?
20년간 연구 해온거니까 어렵지는 않은데 결국 시간이 필요한 거죠. 당장 각 분야에 대회가 엄청 많은데 제도권 밖에 있을 뿐입니다. 기록등록 시스템 자체가 없는데 위원회하면서 만들었습니다. 당장 올해부터 운영하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빠르게 늘어 날겁니다. 가시적으로 터무니없는 준비가 아니라 위원회하면서 동의를 얻었고 틀이 잡혀있고 의사결정을 내가 하는 상황이니까 추진력에 속도가 붙을 겁니다. 실패하지 않을거고, 농구인 100만 양병을 통해 국제경쟁력 확보할 겁니다. 모든 농구인이 먹고 살 수 있는 산업화를 이룰 것이고 농구인 동의 없는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엘리트 농구를 1, 2부로 하고 현재 그 분야는 생계,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부분이니까 건들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바라는 것은 이 디비전 시스템이 확립하는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고 버텨달라는 겁니다. 소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17개 시-도 농구협회, 산하 연맹 지도자들과 각자 생존의 문제에 절박하게 있다보니 행정체계가 사실상 마비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에 복구해가기 위해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선수/비선수 구분을 없애고 승강제를 엮어가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의 없는 무리한 추진은 없을 겁니다. 약속합니다.
농구협회가 모델로 삼을만한 종목이 있었을까요?
축구죠. 디비전 시스템의 모델이고 많은 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축구가 실행하는 과정을 알고 있고 전략보고서 만들 때 축구 관계자 분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도 많이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데 우리 농구는 더 멀리보겠다는 것이죠. 축구는 남자만 디비전 시스템이지만, 농구는 남녀 같이 진행할 겁니다.
농구에 애정이 깊으신 만큼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있을텐데 가장 먼저 어떤 부분부터 신경을 쓰고 있으신지요?
단순합니다. 모든 것은 2032년을 겨냥한 계획입니다. 2032년 농구 등록 선수 100만 명, 남자대표팀 올림픽 8강, 여자는 4강이 목표입니다. 10년 동안 디비전 시스템을 정착시켜서 좋은 저변에서 좋은 선수를 길러내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 산업화의 단계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현재 엘리트 농구선수가 2200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10년 안에 등록 선수 100만 명이라고 하면 ‘인구가 줄고 있는데 무슨 100만 명이냐’고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불가능한 수치가 아닙니다. 농구를 하는 사람은 지금도 많습니다. 시스템 안에 없을 뿐이지요. 한국 농구의 엘리트 시스템은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현재 한국농구는 사기업으로 비교한다면 회생불가죠. 아이러니하게도 엘리트 시스템이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죽지는 않습니다. 생명줄이기도 한셈이지요. 그래서 지금 시스템으로 버텨만 주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학교스포츠클럽 서울시 대회에 등록한 남자 고등부만 200개입니다. 그 중 170개 학교가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또한 서울에만 1만1000개의 학교가 체육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프라와 접근성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스포츠클럽 참가하는 학생만 이 시스템에 넣어도 당장 5만 명이 들어옵니다. 학교 밖 스포츠클럽 인기가 엄청나죠. 현재 시스템에서 그 인원은 안들어와있는 상태입니다. 이들을 디비전 시스템 안에 넣으면 10만 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농구 종목은 죽어간다고 하지만 잠재력이 어마어마 합니다. 그동안 그걸 시스템으로 묶지를 않았을 뿐입니다. 제가 그걸 최대한 빨리하기 위해 온 것이죠.
기자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농구협회에 대한 여론의 시선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특히 남녀 농구 대표팀에 대한 시선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계획 되어 있는 것을 잘 세팅해야겠지요.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을 가기 전에 2026년, 2030년 아시안게임과 두 번의 아시아컵이 있습니다. 남녀 농구팀 모두 30년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경쟁력을 만들어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황금세대를 만들어야겠지요. 16, 17세 대표팀부터 우수선수 리스트를 해서 관리를 하고 육성해나가야 합니다.
지금 고1 선수들이 2032년에는 27세가 됩니다. 꾸준한 관리를 위해서 연령대 대표팀과 지금 대표팀을 같이 관리를 해야하죠. 지금 성인 대표팀 선수 중에서 2028년까지 갈 수 있는 선수, 2032년까지 대표팀을 할 수 있는 선수를 구분해서 준비해야 하고요. 제가 총괄 코디네이터를 맡을 생각입니다. 남자는 KBL, 여자는 WKBL과 협력하는 체계를 복원해 꾸준히 소통을 해야 합니다.
폭넓은 경험을 하신 만큼 기대하는 부분도 큽니다. 임기 동안 어떤 농구협회가 되기를 바라시는지요?
서두에 얘기한대로 목표는 정해져 있습니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지만 디비전시스템을 잘 정착시켜서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중에 좋은 모델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 농구협회 직원의 80% 이상이 88년 생 이후 출생자입니다. 성장하기 위한 이상적인 조직구조입니다.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농구협회가 되겠습니다.
#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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