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개막을 2주 앞둔 NBA 파워랭킹을 산정했는데 역시나 셀틱스는 1위를 차지했다. 결승 진출 가능성은 38.6%, 우승 확률은 25.9%로 모두 전체 1위였다. 영건 파워로 무장한 2위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12.5%-24.0%), 대대적인 전력보강이 이뤄진 3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12.5%-22.0%)와도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보스턴의 위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난 시즌 파이널 우승으로 인해 셀틱스는 역대 최다 우승(18회)팀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되찾아왔다. 그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있다. 내친김에 쭉쭉 달려서 2위 LA 레이커스(17회)와의 격차를 벌리고 싶어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셀틱스는 한때 압도적인 우승횟수 1위팀이었으나 여러차례 암흑기에 시달리는 등 오랜 시간 동안 챔피언 반지를 추가하지 못했고 그사이에 레이커스에게 공동 1위까지 허용한 바 있다.
파이널 우승횟수 1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셀틱스 팬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상대는 숙적 레이커스이기에 더욱 그랬다. 때문에 셀틱스는 더 달릴 필요가 있다. 레이커스 역시 우승에 욕심이 많은 팀인지라 언제 또다시 왕조 혹은 그에 준하는 멤버를 구성할지 모른다.
기회가 왔을 때 몰아서 우승했던 반지의 제왕팀
셀틱스가 처음부터 우승횟수 1위를 달린 것은 아니다. 초창기 10년 동안은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하고 고전했다. 레이커스(5회)가 압도적인 힘으로 앞서나가는 가운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2회)도 강호로 이름을 뽐냈다. 하지만 이후 셀틱스가 무섭게 치고 나갔다. 정규시즌 첫 가드 MVP 밥 쿠지(96‧185cm)가 팀을 강호로 다져놓은 가운데 정규시즌 첫 흑인 MVP이자 역사상 최고의 센터 중 한명인 빌 러셀(2022년 사망‧208cm)이 합류하자 폭발적인 시너지효과가 발휘됐다.
1957년 파이널을 시작으로 1969년까지 무려 11회나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1959년부터 1966년까지는 8회 연속으로 우승을 쓸어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해당 기간 중 준우승은 1958년 단 한차례에 그쳤다. 큰 경기에서 셀틱스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당기간 동안 애틀랜타 호스크와 워리어스, 그리고 레이커스 등이 희생양이 됐다.
호크스는 당시가 팀 역사상 최고 전성기였는데 무려 4차례나 파이널에 진출했다. 하지만 준우승만 3차례에 그쳤다. 1958년 셀틱스를 누르고 우승함으로서 그들의 10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서전에 끊어낸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워리어스는 2차례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셀틱스에 한번 패한 것을 비롯 1967년에는 뜬금없이 끼어든(?) 세븐티식서스에 일격을 당하기도 했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아쉬운 팀은 레이커스다. 해당기간 동안 8번이나 파이널에 올랐음에도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그중 7번은 셀틱스에게 고배를 마셨다. 당시 레이커스 팬들은 셀틱스라면 이가 갈렸을 것이다. 왕조 시절 셀틱스는 러셀과 쿠지를 주축으로 토미 하인손, 샘 존스, K.C. 존스 등 쟁쟁한 레전드를 다수 배출했다.
1970년대는 전국시대였다. 뉴욕 닉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워싱턴 불리츠, 시애틀 슈퍼소닉스 등 다양한 팀들이 나눠서 우승을 가져갔다. 셀틱스같은 경우 러셀, 존스 등 왕조의 주역들이 은퇴하며 암흑기에 빠져드는가 싶었지만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백인 스윙맨 존 하플리첵(2019년 사망‧196cm)을 중심으로 데이브 코웬스, 폴 실라스 등이 활약하며 2회 우승을 추가한다.
1980년대는 셀틱스와 레이커스에게 모두 아쉬움이 있었다. 각각 래리 버드(67‧206cm)와 매직 존슨(64‧206cm)이라는 팀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불세출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탄생했지만 하필이면 전성기가 겹치며 두팀 다 확실한 왕조 구축에는 실패하고 만다. 물론 시각에 따라서는 두팀 모두 왕조를 세웠다고해도 무리는 없다. 버드와 매직이 한창 잘 나갈 때는 각각의 컨퍼런스에서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의 전성기가 겹치지 않았다면 셀틱스와 레이커스 모두 현재보다 좀 더 우승을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둘간 역대급 라이벌 구도로 인해 흥행대박이 난 사무국과 지켜보는 팬들은 좋았다. 버드와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시의 '빅3'는 1981년, 1984년, 1986년에 3차례 파이널 우승을 만들어내면서 쇼타임 레이커스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다.
버드 시대 이후에는 긴 암흑기가 찾아왔다. 여기에는 차세대 주역으로 꼽히던 팀의 미래들이 연달아 사망한 탓도 컸다는 분석이다. 셀틱스는 1986년 드래프트에서 메릴랜드 대학교의 천재 포워드 렌 바이어스를 전체 2번픽으로 뽑으면서 '팀의 10년을 책임질 자원이다'고 자부했으나, 리그 데뷔도 하기 전에 약물중독 쇼크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셀틱스는 낙담하지 않았다. 다음 해인 198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2픽으로 노스이스턴 대학교 출신 스윙맨 레지 루이스를 지명하며 미래에 대비했다. 루이스는 팀내 에이스 급으로 꾸준히 성장하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으나 1993년 플레이오프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 도중 쓰러지고 만다. 이후 회복되는가 싶었지만 그해 7월 연습시합 도중 심장마비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였다.
셀틱스의 겨울은 길었다. 1986년을 마지막으로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2008년이 되어서야 22년만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동안과 달리 당시 우승은 외부에서온 청부사의 힘이 컸다. 기존 간판스타 폴 피어스(47‧201cm)에 더해 레이 앨런(49‧196cm)이 합류했고 무엇보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고군부투하고 있던 케빈 가넷(48‧211cm)이 둥지를 옮겨온게 결정적 우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가넷이 조금만 더 빨리 셀틱스로 왔어도 1회 우승에 그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아쉽게도 가넷은 전성기 끝나락이었고 셀틱스는 22년만의 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난 시즌 셀틱스는 다시금 정상을 되찾았다. 현재 셀틱스는 베테랑 가넷이 이끌던 시절과는 다르다.
제이슨 테이텀(26‧203cm), 제일런 브라운(28‧196.2cm), 데릭 화이트(29‧193cm), 샘 하우저(27‧201cm),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29‧221cm) 등 주축 선수들의 나이가 젊다. 전성기가 한참 남았다는 얘기다. 알 호포드(38‧206cm)는 노련하며 즈루 할러데이(34‧191cm)는 어지간한 20대 못지않게 왕성하게 뛰어다닐 정도로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핵심 멤버 중 수비에 소홀한 선수는 한명도 없다는 점이 팀 보스턴의 강함을 설명해주고 있다. 현재의 셀틱스가 러셀, 하플리첵, 버드의 시대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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