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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리 동네 농구단을 소개합니다 ③ 시카고는 미국의 춘천이다?

점프볼 기자 / 기사승인 : 2025-02-12 06: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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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연길 MBC 해설위원] 지난달 미국 중북부 거대한 옥수수 생산지대 콘벨트에 위치한 캔사스, 아이오와 등을 소개했지. 그때 소개한 대로 콘벨트에는 13개 주가 속해있어. 이번 달에는 조금 더 북쪽으로 가볼게. 그래도 여전히 콘벨트를 벗어나지 못해. 그 정도로 콘벨트는 커. 한반도 크기의 무려 2배 이상이니까. 이번에 소개할 지역은 일리노이, 위스콘신, 미네소타야.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먼저 가볼 곳은 일리노이州야. 앞서 언급한 세개 주 중 가장 남쪽에 있어. 지난달에 소개한 아이오와, 미주리州 바로 동쪽에 있고 위스콘신州 남쪽에 있어. 일리노이 북쪽에는 5대호 중 하나인 미시건호가 있는데 미시건호에 인접한 시카고라는 미국 중부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있지.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윌리스 타워(舊시어스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미시건호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다 같은 호수야. 거의 우리나라 크기의 절반이 넘지. 이 미시건호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시카고는 ‘윈디 시티(Windy City)’라고 불려. 시카고는 내륙에 있어 ‘격해도(隔海度:바다와 떨어진 정도)’가 크고 바람까지 강해 겨울에는 더욱 춥게 느껴지지. 여기까지 읽어보면 이번에 가볼 곳이 어딘지 알겠지? 바로 시카고야.

미국의 춘천, 일리노이州 시카고

소제목만 보고 ‘쟤가 미쳤네’라고 할 수도 있어. 근데 지리적 위치상 시카고를 우리나라에 대입하면 춘천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거야. 지난달에 소개했듯이 콘벨트는 우리나라에서 옥수수 생산지로 유명한 강원도에 비교할 수 있어.

그리고 시카고가 호숫가에 있다는 것과 춘천도 호반 도시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아마 여러분들에게 시카고하면 떠오르는 단 하나의 팀은 시카고 불스일거야. 불스는 너무 유명하니까 지면상 생략하고 다른 팀들을 소개할게.

NBA 원년 강호, 시카고 스택스(Chicago Stags)
NBA가 1946년 BAA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웬만한 팬들은 알거야. 당시 11개 팀으로 시작한 BAA는 서부 지구(Western Division) 5개 팀이 있었지. 그중 하나가 스택스였어. 당시 가장 서쪽에 있는 팀이기도 했지. 스택스는 39승22패로 정규 시즌 서부 지구 1위를 차지했어.

당시 강력한 공격농구로 경기당 77점을 올리며 득점 1위를 차지했지. 2위 팀과 3.2점차였어. 스택스는 원년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에게 1승4패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 이후 1949-1950시즌을 끝으로 재정난에 구단을 매각했어. 그리고 NBA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졌지.

스택스 출신으로 유명한 선수로는 이후 여러 팀에서 뛰며 올스타에 5번 뽑힌 뛰어난 포인트가드 앤디 필립, 농구 역사상 최초의 점프슈터로 알려진 케니 세일러스, NBA 득점왕을 지내기도 했던 맥스 자슬로프스키 등이 있어. 또한 스택스의 홈구장 시카고 스타디움은 오랫동안 시카고 불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며 마이클 조던도 대부분의 경력을 이곳에서 보낸 바 있어.

現워싱턴 위저즈, 前시카고 패커스(Chicago Packers)

대부분 팬들은 당연히 워싱턴 위저즈를 알거야. 하지만 이들의 기원이 시카고 패커스였다는 사실을 아는 팬들은 드물 거야. 1961년 창단한 패커스는 이듬해 제퍼스(Zephyrs)로 이름을 바꿨고 그 다음 시즌에는 볼티모어로 연고지를 옮겨 불리츠로 개명했어. 요즘도 워싱턴은 클래식 저지로 제퍼스 당시 저지를 입기도 해.

패커스는 신생구단이라 시카고에서 2시즌 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진 못했어. 하지만 1961년 NBA 드래프트 1순위로 걸출한 신인 월트 벨라미를 뽑았지. 211cm의 센터 벨라미는 신인 시즌에 31.6점, 19.0리바운드, 2.7어시스트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남겼어. 하지만 이게 커리어하이야.

당연히 신인왕은 벨라미의 몫이었어. 벨라미는 이후 올스타에도 4차례 뽑혔지만 당대 최고 센터들인 윌트 채임벌린, 빌 러셀에 가려졌지. 또한 슬릭 레너드, 돈 넬슨 같은 명장들도 선수시절 패커스에서 뛴 바 있어.

숨은 명문, 시카고 아메리칸 기어스(Chicago American Gears)
시카고 아메리칸 기어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대다수일 거야. 그런데 이 팀은 농구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팀 중 하나야. 시카고 아메리칸 기어스는 팀명처럼 실업팀이었어. 그러다 1944년 NBL(National Basketball League)에 합류했지. NBL은 당시 미국의 중심이 아닌 중서부 지역이 중심무대였고 팀명에 기업 이름을 다는 등 세미프로리그에 가까웠어.

아메리칸 기어스는 1946년 시카고에 위치한 드폴 대학 출신 걸출한 센터 조지 마이칸을 영입해 곧바로 NBL 정상에 올랐어. 아메리칸 기어스는 다음 시즌 NBL에서 탈퇴해 새로운 리그PBLA(Professional Basketball League of America)에 가입했지. 그런데 이게 패착이었어. 리그가 금방 사라지면서 팀도 와해되고 말았던 거야.

뉴욕이 아닌 시카고 태생, 할렘 글로브트로터스(Harlem Globetrotters)

농구 중계 보다보면 나이 많은 해설위원이나 감독이 선수들이 기술을 발휘하려다 턴오버를 범했을 때 ‘할렘 농구하냐?’라고 조롱하는 것을 들을 수 있어. 여기서 ‘할렘농구’란 아마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를 언급하려는 것 같아.

그런데 두 가지 측면에서 할렘농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 첫 번째, 할렘을 대표하는 농구단은 글로브트로터스 외에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도 있기 때문이야. 미국 농구 역사상 최초의 흑인 프로농구단인 르네상스는 뉴욕 할렘에 위치한 르네상스 볼룸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전설적인 팀이지. 뉴욕 르네상스 혹은 렌스(Lens)로도 불린 이 팀은 글로브트로터스처럼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어. 따라서 할렘농구라는 표현은 묘기 농구라는 고유명사로 사용될 수 없지.

두 번째,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할렘은 연고지가 아니야. 그냥 흑인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한 것일 뿐이지. 실제로 글로브트로터스는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에서 탄생했어. 처음에는 ‘사보이 빅 파이브(Savoy Big 5)’라고 불렸어. 사보이 볼룸이 홈구장이었으니까. 앞서 르네상스에서도 나왔던 볼룸(Ballroom)이란 장소는 무도회장을 말해. 과거에는 무도회장에서 농구도 보고 춤도 추는 경우가 많았지.

1926년에 창설한 글르브트로터스는 여전히 전 세계를 돌며 농구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어. 참고로 르네상스와 글로브트 로터스는 라이벌이었고 모두 명예의 전당에 팀으로서 이름을 올렸지.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Tri-Cities Blackhawks)
시카고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아이오와州와 일리노이州 경계로 가면 몰린이라는 도시가 있어. 지금은 몰린에 아이오와에 있는 데븐포트, 베튼도프 등 총 4개 도시를 묶어 쿼드 시티스(Quad Cities)라고 불러.

하지만 과거에는 몰린과 락 아일랜드, 아이오와州의 데븐포트 등 인근 세 개 도시를 트라이시티스라고 불렀지. 그리고 이 지역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인디언 지도자 ‘블랙 호크’의 이름을 따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라는 팀이 있었어. 원래 1946년 NBL 소속으로 창단한 버팔로 바이슨스(Buffalo Bisons)가 창단 38일 만에 몰린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이름도 바꿨어.

블랙호크스는 1949년 BAA가 NBL을 흡수합병하며 NBA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할 때 자연스럽게 NBA의 일원이 되었지. 이후 1951년 밀워키로 연고지를 다시 옮기며 호크스가 되었어. 바로 오늘날의 애틀랜타 호크스의 기원이지. 1949년 당시 블랙호크스의 감독은 훗날 보스턴 셀틱스 왕조를 일군 레드 아워백이었어.

월드 프로페셔널 바스켓볼 토너먼트(World Professional Basketball Tournament)
농구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농구팬들이라면 미국에는 수많은 프로 농구리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거야. NBA가 출범하던 당시도 NBL, ABL 등 여러 프로 리그가 있었지. 앞서 언급한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할렘 렌즈와 오리지널 셀틱스처럼 리그에 속하지 않고 원정을 다니는 독립팀들도 있었어.

그래서 이들 중 강팀들을 한데 모아 최강팀을 가리는 대회가 있었지. 마치 NCAA 토너먼트처럼 말이야. 그 대회가 바로 월드 프로페셔널 바스켓볼 토너먼트(일명 WPBT, 혹은 시카고 월드 챔피언십)였어. 1939년 시카고 헤럴드 아메리칸이란 신문사가 주간한 이 대회는 1948년까지 모두 10년 동안 열렸지. 바로 시카고에서 말이야.

이 대회 우승팀 면면도 대단해. 초대 우승팀이 할렘 렌즈(뉴욕 렌즈로 참가), 2회 대회 우승팀이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유일한 3연패(1944-46) 팀이 포트웨인 졸너 피스톤스(現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마지막 대회 우승팀이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야. 단판 승부 토너먼트라 재미가 컸고 우승하기는 쉽지 않았어. 전설적인 구단 오리지널 셀틱스(뉴욕 셀틱스로 참가)는 첫 대회 5위에 그쳤고 이후 불참했지. 또 다른 유명구단 필라델피아 스파스도 1941년 유일한 참가에서 1라운드 통과에 만족해야 했어.

이 대회는 시카고의 시카고 컬리시움, 시카고 스타다움, 시카고 인터내셔널 앰피시어터, 메디슨 스트리트 아머리, 132 인펀트리 아머리 등 시카고 지역에서 열렸어. BAA가 급성장하며 대회 참가를 허용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막을 내렸지.

일리노이州의 유명 대학들
일리노이 대학 파이팅 일라이나이(University of Illinois Fighting Illini)

일리노이州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 명문 대학은 일리노이 대학이야. 일리노이주 어바나-샴페인에 위치하고 있어. 일리노이 대학은 파이널 4에만 5차례 올랐지만 우승은 없어. 2005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것이 최고 성적이지. 당시 일리노이 대학은 데런 윌리엄스(前유타 재즈), 루서 헤드(前휴스턴 로케츠), 디 브라운(前피닉스 선스) 등 세 명의 걸출한 가드를 앞세운 3가드 전술로 유명했지.

하지만 일리노이 대학 역사상 최강팀은 1941년부터 43년까지 빅 10 컨퍼런스를 주름잡았던 일명 ‘위즈 키즈(The Whiz Kids)’야. 앤디 필립, 어서 스마일리, 켄 먼키, 엘리스 밴스, 아트 매티슨 등 저학년이 주축인 위즈 키즈는 42-43 시즌 17승1패(빅 10 컨퍼런스 12승무패)로 전미 1위를 차지했어. 하지만 주전 3명이 2차 대전에 징집 대상이 되자, NCAA 토너먼트 진출을 포기하고 참전을 결정하며 오히려 더 명성을 높였어.

해리 쿰스, 루 헨슨, 빌 셀프 감독 등 명장들의 지휘로 전국구 강호로 군림하던 일리노이 대학은 1988-1989시즌 케니 배틀, 캔들 길, 닉 앤더슨 등 NBA 3인방을 앞세워 파이널 4에 다시 올랐어. 일리노이 대학 출신 유명 선수로는 현역은 아요 도순무가 있고 앞서 언급한 선수들 외에 데릭 하퍼, 조니 ‘레드’ 커, 에디 존슨 등이 있지.

드폴 대학 블루 디몬스(DePaul University Blue Demons)
시카고에 위치한 드폴 대학도 명가야. 이 대학의 역사는 1942년부터 1984년까지 무려 42시즌 동안 지휘봉을 잡은 레이 메이어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실제 메이어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드폴 대학은 1943년과 1979년 모두 두 차례 파이널 4에 올랐어. 무려 36년의 간격이 있지? 그런데 놀랍게도 두 번 모두 메이어 감독이 이룬 성과야.

또한 1945년 드폴 대학은 조지 마이칸이란 걸출한 센터를 앞세워 NIT(National Invitation Tournament)에서 우승했어. 당시는 NCAA 토머넌트와 NIT의 위상이 막상막하였지. 1979년에는 1학년 테리 커밍스, 2학년 마크 맥과이어라는 걸출한 스타를 앞세워 다시 파이널 4에 진출했어. 드폴 대학은 이후 메이어 감독의 아들 조이 메이어가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지. 그리고 팻 케네디 감독이 부임해 퀸튼 리차드슨, 바비 시몬스, 폴 맥퍼슨, 스티븐 헌터 등 NBA에 진출할 스타들을 리쿠르팅했지만 성과는 미미했어.

이외에도 일리노이州에는 덕 콜린스를 배출한 일리노이 주립대학 레드버즈(Illinois State University Redbirds), 노스웨스턴 대학 와일드캐츠(Northwestern University Wildcats), 2021년 WNBA 챔피언 시카고 스카이(Chicago Sky) 등이 있지.

미국의 철원-양구, 미네소타-위스콘신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도시는 강원도 철원이야. 그렇다면 미국에서 가장 추운 도시는 어디일까? 바로 미니애폴리스야. 물론 알래스카를 빼고 말이지. 미니애폴리스는 미네소타州에 있어. 미네소타를 대표하는 NBA팀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야. 팀버울브스도 불스처럼 생략할게.

NBA 원조 왕조,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Minneapolis Lakers)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는 벤 버거와 모리스 캐픈이 NBL 소속이었다가 해체하려는 구단 디트로이트 젬스(Detroit Gems)를 매입해 연고지를 미니애폴리스로 옮기며 1947년 재창단한 구단이야. 이후 레이커스는 명장 존 컨들라를 임명하고 PBLA 해산으로 인한 드래프트로 208cm의 당대 최고 센터 조지 마이칸을 뽑았지.

창단 첫 시즌에 NBL 우승을 차지한 레이커스는 이듬해 BAA로 자리를 옮겼고 49년부터 54년까지 6시즌 동안 5차례 우승을 거두며 NBA 최초의 왕조를 구축했어. 당시 레이커스는 마이칸 외에도 번 미켈슨, 짐 폴라드, 슬레이터 마틴 등 명예의 전당 4인방이라는 막강 라인업을 자랑했지. 하지만 마이칸 부상 이후 쇄락을 길을 걸었어. 그래서 마이칸이 잠시 복귀하기도 했지만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지.

그런 레이커스를 살린 것은 엘진 베일러야. 1958년 드래프트 1순위로 레이커스에 입단한 베일러는 루키 시즌에 팀을 파이널까지 올려놓았지. 그리고 베일러 덕에 레이커스는 구단을 매각할 수 있었고 다들 아시다시피 로스엔젤리스로 연고지를 옮기게 되었어. 베일러가 없었다면 자칫 현재의 LA 레이커스는 사라질 수도 있었지.

그 외에 미네소타 팀들
미네소타州를 대표하는 팀은 미네소타 대학 골든 고퍼스(University of Minnesota Golden Gophers)야. 미네소타 대학은 미니애폴리스에 자리하고 있어. 20세기 초반 전미 최고 팀으로 꼽히기도 했던 미네소타 대학은 명성에 비해 파이널 4는 1997년 단 한 번 올랐지.

당시 미네소타는 바비 잭슨, 샘 제이콥슨, 퀸시 루이스 등 NBA 진출 선수가 5명이나 포진했던 강호였어. 하지만 이후 성적 조작 스캔들로 NCAA는 1997년 기록을 삭제했어. 미네소타대학은 걸출한 빅맨을 많이 배출했어. 클레이 탐슨의 아버지 마이클 탐슨과 케빈 맥케일은 2시즌을 함께 보냈지. 또한 랜디 브루어, 크리스 험프리스, 조엘 프리즈빌라, 짐 피터슨 등 괜찮은 NBA 빅맨들을 배출했어.

이외에도 트렌튼 터커, 루 헛슨, 보숀 레너드 등도 미네소타 대학 출신이야. NBA 라이벌 리그였던 ABA 소속의 미네소타 머스키스(Minnesota Muskies)라는 팀도 있었어. ABA 원년인 1967-68 단 한 시즌을 미네소타州 블루밍턴을 연고지로 삼았지. 그리고 다음 시즌부터 마이애미로 연고지를 옮겨 플로리디언스로 개명했어. 다음 시즌에는 피츠버그 파이퍼스(Pittsburg Pipers)가 미네소타로 연고지를 옮겨 1시즌을 치르고 다시 피츠버그로 돌아가기도 했지. 이외에 WNBA 우승을 4차례나 차지한 명가 미네소타 링크스(Minnesota Lynx)도 있어.

위스콘신을 대표하는 구단들

우리나라에는 춘천 위에 양구군이 있어. 미국에는 일리노이州 위에 위스콘신州가 있지. 위스콘신州에는 밀워키 벅스라는 유명한 구단이 있어. 불스, 팀버울브스처럼 벅스 소개도 생략할게. 위스콘신을 대표하는 대학은 위스콘신 대학 배저스(University of Wisconsin Badgers)야.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도시로 자주 꼽히는 위스콘신州 매디슨에 있어.

위스콘신 대학은 NCAA를 대표하는 수비팀이야. 위스콘신대학은 1941년 NCAA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워싱턴 주립대학을 39-34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어. 2015년에는 듀크 대학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 이외에 2000년, 2014년에도 파이널 4에 오른 명가야. 위스콘신 대학 출신으로는 마이클 핀리, 데빈 해리스, 프랭크 카민스키, 웨스 매튜스(웨슬리 매튜스의 아버지) 등이 있어. 부산 KT 소닉붐에서 뛰었던 마커스 랜드리도 위스콘신 대학 출신이야.

위스콘신의 또 다른 명가는 마켓 대학이야. 마켓 대학은 밀워키에 위치하고 있어. 홈구장도 벅스와 같은 파이서브 포럼이지. 마켓 대학은 1977년 알 맥과이어 감독 체제에서 꽃을 피웠지. 1974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처음으로 파이널 4에 올랐어. 그리고 1977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물리치고 NCAA 우승을 거뒀어.

이후 잠잠하던 마켓 대학은 탐 크린 감독 부임 이후 다시 활기를 찾았지. 그리고 2003년 드웨인 웨이드라는 걸출한 스타를 앞세워 다시 한 번 파이널 4에 올랐어. 마켓 대학 출신으로는 웨슬리 매튜스, 지미 버틀러, 제이 크라우더, 모리스 루카스, 닥 리버스 등이 있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뛰었던 아말 맥카스킬도 마켓 대학 출신이야.

또한 앞서 언급한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도 1951년부터 1955년까지 밀워키를 연고지로 삼은 바 있어. 이때 연고지를 이전하며 블랙을 떼고 호크스가 되었지. 당시 밀워키에서 뛴 선수로는 프랭크 셀비, 밥 페팃, 알렉스 해넘, 맥스 자슬로프스키 등이 있어.

#사진_AP연합뉴스, NBA.com, NCA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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